끼이익. 귀를 찌르는듯한 금속성 소음에 놀라 깨니 너덜너덜 다 떨어진 비행기가 얼어붙은 활주로로 마치 돌진하듯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착륙을 시도하는 걸 보면 무모한 것인지 자신감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뿐 만 아니다. 착륙에 성공한 뒤 하강장까지 가는 동안에도 마치 고속버스가 달리듯 속도가 빠르다. 러시아 사람들 성미 급하긴 한국 사람 뺨치는 것 같다. 사방이 모두 하얗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역시 낮은 기온 탓에 입에서 나온 입김이 속눈썹에 얼어붙는다. 콧속 털도 얼어붙어 숨쉬기에도 매섭다. 현지기온 영하 25도. 마치 얼음왕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고 신고식을 하라는 것 같기도 하다.
원정대는 이곳에서 이틀내지 사흘을 머물며 추코트 자치주에 다시 원정 허가를 다시 내야한다.
이 곳은 구소련시절부터 군사적 요충지라 외국인의 입국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곳이란다. 탐험이라는 특수 목적으로 3년전부터 끈질기게 입국 허가를 요청한 덕택에 입국을 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군인들이 올라와 원정대와 취재진의 여권을 압수해갔다. 아무리 특수지역이라고 해도 그렇지 국내선 비행기에 올라 여권을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가져가다니, 정말 황당하다.
결국 공항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린 끝에 여권을 돌려받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얼어붙은 바다를 가로질러 차량으로 30여분 달려 아나디리 도심에 도착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이미 밤이 시작됐다. 어두컴컴한 가로등 밑으로 담비털 모자와 모피로 감싼 표정 없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마치 유령도시에 온 느낌을 들게 한다.
아나디리 (러시아)=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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