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뚜렷한 흥행작이 없어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지난해 ‘라디오 스타’를 통하여 부활해 안성기 씨와 함께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에서 “앞으로는 조연과 단역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 있는 소감을 밝혀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한층 성숙된 큰 배우로서의 면모였다.
슬럼프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다시 정상에 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화까지 하게 된 것은 올 시즌 최악의 시련을 맞고 있는 KCC 허재 감독 때문이었다.
박 씨와 허 감독은 30년 가까운 친구 사이다. 몇 해 전 본지에 ‘자랑스러운 내 친구, 허재’란 칼럼을 쓰기도 했던 박 씨는 2004년 친구의 은퇴 경기 때 꽃다발을 건네며 새 출발을 축하해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
그렇기에 박 씨에게 친구 허 감독의 부진은 남의 일 같지 않으리라.
최하위 KCC는 1월 중순 이후 한 달이 넘도록 1승도 건지지 못하고 팀 최다인 10연패에 빠져 있다.
KCC의 승패 기록을 줄줄 외우고 있는 박 씨는 마침 며칠 전 허 감독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고 했다. “너무 잔인한 것 같아 농구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아끼는 마음에 힘들게 말문을 연 박 씨는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자신처럼 허 감독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되기를 바라는 듯했다. 늘 세상의 중심에만 서 있던 허 감독에게 현실은 감당하기 힘들고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는 것.
“저나 허재나 길게 보면 이제 마라톤의 반환점 정도 돈 겁니다. 포기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죠.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 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허 감독 역시 그렇다. 박 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를 향해 여전히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허재 파이팅.’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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