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만이 이종격투기 데뷔 후 13전을 치르는 동안 패배를 맛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 그러나 레미 본야스키와 제롬 르 벤너 전은 선전 끝에 당한 판정패였다. 최홍만이 처음으로 다운을 당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 격투기 팬들은 K-1 무대에 최홍만의 적수는 챔피언 세미 쉴트 외에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월등히 큰 신장을 이용한 잽과 니킥을 보유한 최홍만을 어지간해서는 공략하기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이번 마이티 모와의 경기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복싱 선수 출신인 마이티 모는 최홍만에 비해 30cm이상 작았다. 1라운드 초반 마이티 모가 허공에 내지르듯 휘두르는 라이트 훅은 최홍만의 안면에 닿지 않을 것 만 같았다.
최홍만의 약점으로 알려진 하체를 로킥으로 공략하는 대신 펀치로 맞선 마이티 모의 이러한 모습이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사실 모의 훅 공격은 상당히 계산된 것이었다. 최홍만의 주특기인 레프트 잽이 나오는 순간 왼쪽 턱이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작전.
이 작전으로 1라운드에서 이미 몇 차례 재미를 본 마이티 모는 결국 2라운드에서 기다렸다는 듯 강력한 라이트 훅으로 최홍만을 링 위에 쓰러뜨렸다.
물론 최홍만도 잽 공격 후 가드가 열린다는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라운드 후반부터 미들킥을 자주 구사했던 것은 저돌적으로 파고들며 빈틈을 노리는 마이티 모의 훅을 의식한 결과였다.
그러나 단발로 끝나는 최홍만의 미들킥은 방어적인 기술에 머물러 세미 쉴트가 자랑하는 미들킥에 이은 좌우 연타 콤비네이션 같은 위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발목 부상으로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 최홍만의 이날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이티 모의 펀치를 맞고 다소 위축됐을 뿐 자신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한 상대의 전술에 말린 이유였다.
이번 경기로 최홍만의 약점은 명확히 드러났다. 그동안 신장의 이점을 앞세워 승리를 쌓아왔지만 기술적인 진화가 없다면 더 이상 강자로 군림하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했다. 링 위에서의 움직임, 좌우 연타와 킥 공격의 조합, 가드 문제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최홍만은 시합 전 마이티 모의 펀치를 맞아보고 싶다는 호기를 부렸고 최근에는 프라이드 챔피언 표도르와의 대전을 희망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달까지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경기 입장 시엔 랩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최홍만은 ‘여유만만’ 그 자체였다.
최홍만의 자신감은 현재의 그를 만든 밑거름이었다. 하지만 이제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한 이상 더욱 더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그의 자신감은 한낱 자만심으로 보여 질 뿐이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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