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던 사람들이 '아, 이제 힘들어지나'하고 느끼던 바로 그 순간 이봉주(37·삼성전자)의 진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봉주는 처음부터 선두 그룹에서 레이스를 펼쳤다. 처음 10여명이던 선두 그룹은 한 명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해 25km 지점에서 8명으로 줄었고 35km 지점에 이르러 이봉주와 폴 키프로프 키루이, 라반 킵켐보이, 에드윈 코멘(이상 케냐)과의 4파전 양상으로 변했다. 마라톤 최강국 케냐 선수들과 한국의 3대1의 싸움이었다.
관심은 '누가 먼저 승부수를 띄울 것인가'하는 것.
승부를 먼저 건 것은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 최고 기록이 2시간6분44초로 가장 빠른 키루이. 이 기록은 이봉주(2시간7분20초·한국기록)보다 36초나 빠른 데다 지난해 로테르담 대회 때 세운 기록인 반면 이봉주의 최고 기록은 2000년에 세운 꽤 오래된 것. 둘의 기록만으로 볼 때 이봉주의 열세였다.
키루이는 잠실대교를 건너기 직전 오르막이 막 시작된 35.15km 지점에서 보폭을 빠르게 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레이스는 뒤 쪽에 이봉주와 코멘, 킵켐보이가 죽 늘어서서 쫓는 양상이 됐다.
36km 지점에서 내리막이 시작됐지만 선두인 키루이와 2위 이봉주의 거리는 계속 벌어져 38.5km 지점에선 거의 100m까지 뒤쳐졌다.
결승 지점인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전광판으로 레이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올 때 이봉주의 스퍼트가 시작됐다. 둘의 사이가 다시 좁혀졌고 이봉주는 40.62km 지점에서 키루이의 왼쪽 옆으로 지나친 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고개를 돌려 이봉주를 쳐다보는 키루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승부는 여기에서 갈렸다.
이봉주는 "케냐 선수가 계속 빨리 뛸 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규훈(건국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이봉주의 지구력은 유명하다. 키루이와의 심리전에서 뚝심의 이봉주가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 우승(2시간8분04초)으로 세운 기록
①국내 대회 한국 선수 최고 기록=2004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자신이 세운 2시간8분15초(5위) 경신
②2001년 보스턴마라톤 이후 6년 만의 국제대회 우승
③동아마라톤에서는 1995년 우승 이후 12년 만의 우승
④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금메달 이후 5년 만의 재기(아시아경기도 국제대회이지만 단일대회가 아닌 종합대회)
⑤2007년 시즌 최고 기록=다니엘 은젱가(케냐)가 2월18일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9분45초 경신
⑥37번 도전해서 35번째 풀코스 완주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