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아, 네가 있어 우리는 행복하다.”
30m 정도 처졌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7·삼성전자)가 막판 레이스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를 추월하자 시민들은 함성과 갈채를 쏟아냈다.
18일 열린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서울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몰려나와 2004년 대회 이후 3년 만에 출전한 이봉주가 키루이 등 세계적인 건각들을 따돌리고 우승하기를 빌었다. 이봉주가 처질 때는 안타까움에, 앞설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손에 진땀을 쥐며 성원했다.
1970년생인 이봉주는 한국 나이로는 38세, 두 아들(3, 4세)을 둔 아버지다.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으로 여겨지는 나이지만 그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이봉주 결승선 통과장면
이날도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다 잠실대교를 건너기 직전인 35km 지점에서 키루이가 선두로 치고 나가자 도로변의 시민들은 물론 집에서 TV를 지켜보던 팬들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38.5km 지점에선 약 30m 차. ‘결국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라며 실망하는 순간 이봉주의 역전극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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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경험이 많은 이봉주는 20m 차까지 따라잡은 뒤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달렸다. 바로 따라붙으면 숨소리를 느끼고 키루이가 다시 달아날 수도 있었기 때문. 그리고 40km 근처에서 다시 살짝 키루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서울 코스를 잘 아는 이봉주가 좀 더 짧은 거리로 뛰기 위한 포석이었다. 결국 이봉주는 잠실종합운동장 사거리 왼쪽으로 꺾어지는 코너에서 절묘하게 키루이를 추월하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16년간 달린 베테랑의 힘이었다.
이봉주의 우승기록은 2시간 8분 04초. 성급하게 스퍼트 했던 키루이(2시간 8분 29초)를 25초 차로 제치고 당당하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이봉주의 모습에 잠실종합운동장에 운집한 1만여 팬들과 TV를 시청하던 국민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윤여춘 MBC 해설위원은 “믿을 수 없는 멋진 역전극이었다. 마라톤에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고 손기정 선생이 우승해 일제 치하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깨웠다면 이봉주는 어려운 국내 경제 상황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서민들에게 “역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봉주는 주위에서 “이미 한물갔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때도 “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며 묵묵히 땀을 흘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한국 최고기록(2시간 7분 20초)에 이은 자신의 통산 세 번째 호기록을 수립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봉주는 이날 우승한 뒤 “몸을 잘 만들어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당찬 포부도 밝혔다.
이봉주는 이날로 풀코스만 35번 완주했다. 그동안 2번만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했다. 완주 거리만도 1476.825km. 세계 마라톤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진기록이다. 이봉주는 “아직 멀었다. 뛸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달릴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봉주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3kg이나 감량했다. 평소 58kg이던 체중을 55kg으로 줄였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제주도와 경남 고성군, 일본 등을 오가며 3개월간 강도 높은 훈련을 한 결과다. 목표를 향해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며 끊임없이 질주한 덕분에 이날 역전 드라마를 펼칠 수 있었다.
국민이 그에게 언제나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이유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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