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은 시간 도쿄체육관은 거대한 공연장 같았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6800여 명의 시선은 하얀 빙판 위에 선 36번째 선수, 김연아에게 모아졌다.
관중은 숨을 죽인 채 빨강과 검정이 어우러진 강렬한 스타일의 연기복을 입은 김연아가 천천히 무대 한가운데로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다. 영화 물랑루즈 삽입곡 ‘록산의 탱고’의 강렬한 비트가 곧이어 체육관을 가득 메웠고 김연아는 음악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점프인 ‘트리플 트리플 콤비네이션(연속 공중 3회전)’ 시도. 날렵한 공중 동작에 깔끔한 착지까지, 완벽한 성공이었다.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찬사의 의미인 꽃다발이 빙판 위에 쏟아져 내렸다.
로이터통신의 알라스타마 히머 기자는 “믿을 수 없는 연기다. 환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심판 채점 결과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규정) 기술요소 점수에서 41.49점, 프로그램 구성 점수에서 30.46점을 받아 합계 71.95점의 역대 최고 점수로 1위에 올랐다. 자신의 최고 점수인 65.22점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까지 피겨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최고 점수는 2003년 캐나다 마스터카드대회에서 미국의 샤샤 코언이 세운 71.12점.
일본의 안도 미키가 67.98점을 받아 2위.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는 김연아의 연기에 부담을 느꼈는지 ‘트리플 트리플 콤비네이션’ 시도에서 실수를 하며 61.32점을 받아 5위로 밀려났다. 유럽선수권 우승자인 캐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67.15점)가 3위. 지난 대회 우승자인 키미 마이스너(미국·64.67점)는 4위.
김연아는 “통증 때문에 이번 대회는 사실상 체념했었다. 오늘 오전 진통제를 먹고 나서야 통증이 완화됐고 부담 없이 연기를 한 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24일 24명이 겨루는 프리스케이팅(자유)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선수권 우승에 도전한다. 김연아가 21번째로 출전하며 이어 아사다가 22번째, 안도가 23번째로 각각 경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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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연아와의 일문일답.
“그렇게 들었다. 너무 기쁘고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연기 도중 실수가 있었나.
“큰 실수는 없었다. 한 차례 점프 뒤에 약간 미끄러져 균형을 잠시 잃었을 뿐이다.”
―내일 우승이 유력한데….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 더 자신이 있는 만큼 기량을 다듬고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 경기에 더 집중해 좋은 결과를 내겠다.”
도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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