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부의 케냐 몸바사에 코리안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19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가 결정됐던 날처럼, 1996년 5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가 이뤄진 날처럼 대회 유치를 위해 노력해 온 관계자들은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대구의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가 결정된 27일 오후 9시(한국 시간). 화이트샌즈호텔 마쿠타노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눈과 귀는 라민 디아크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회장에게 쏠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디아크 회장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1년 개최지는 대구”라고 발표한 순간 발표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유종하 유치위원장과 김범일 대구시장은 디아크 회장과 함께 발표장 아래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개최 도시 협약서에 사인했다. ‘다윗’ 대구가 강력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나선 러시아의 수도 ‘골리앗’ 모스크바를 누르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를 공식적으로 따내는 순간이었다.
모스크바는 이날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세계 최고의 육상스타 옐레나 이신바예바까지 동원하는 강수를 뒀다. 모스크바 유치위 관계자들은 발표 당일에도 “이신바예바가 오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는 말만 반복할 정도로 신경전을 벌였다. 유치 발표 전날인 26일 오후(현지 시간)에 케냐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진 이신바예바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연설까지 하며 모스크바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대구 유치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박정기 IAAF 집행이사는 “유치 막판에 모스크바의 움직임이 너무 거세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며 “다행히 동료 집행이사들이 의리를 지켜 줬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대구의 시장 잠재력과 운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유치위는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전날 리허설 때 포함시키지 않았던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첫째, 150만 달러를 IAAF 육상학교 프로그램에 기부하고 둘째, 대구에서 국제육상아카데미를 개최해 선수, 코치, 심판의 교육비용을 부담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기초 투자로 3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IAAF 공식 파트너 형태로 특정 기업을 후원사로 반드시 선정할 것을 약속했다. 대구는 전날까지 △대회 시작 3주 전부터 폐막 사흘 후까지 선수, 임원에게 숙박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미디어 관계자에게는 하루 숙박과 3식을 10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며 △대회 시작 3주 전부터 모든 참가 선수에게 훈련 장소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몸바사 쾌거’ 뒤에는 많은 이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
정몽준(56)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1994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맡아 오면서 맺은 세계 스포츠계의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대회 유치에 앞장섰다. 박상하(62) 국제정구연맹 회장도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과 펜싱, 하키연맹 회장 등을 맡으며 친분을 쌓아 온 인사들에게 대구 유치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노력했다. 지역 기업인들도 나섰다. 유치 관련 통장을 발행한 대구은행(은행장 이화언)은 10억 원을 기탁하기로 했다. 이인중(62·화성산업 회장)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김영훈(55·대구육상연맹 회장) 대성그룹 회장, 김동구(56) 금복주 대표이사, 구정모(54) 대구백화점 대표이사, 노희찬(64) 삼일방직 회장 등도 각각 적게는 3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의 후원금을 내놨다. 경북도와 도의회, 대구환경시설공단 등 단체도 후원금을 기탁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모은 후원금만 22억 원에 이른다.
몸바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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