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에서 격투기로 전향한 후 근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링 위에 올랐으나 상대 베르나르 앗카가 날린 하이킥의 충격에 이렇다할 공격을 보여주지 못하고 TKO패로 무릎을 꿇었다.
씨름 선수 시절 화려한 테크닉을 앞세워 금강급 최강자로 군림해온 신현표는 당초 많은 격투기 팬들의 관심을 모아왔다. 타고난 운동 능력 뿐 아니라 격투기 데뷔를 미루며 만반의 준비를 해왔던 점은 한국의 새로운 격투기 스타의 탄생을 기대케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첫 경기는 너무 싱거웠다. 라운드 초반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으나 불의의 하이킥으로 페이스가 쉽게 무너져 버린 점이 안타까웠다. 하이킥을 허용한 후 빠르게 스탠딩 자세로 돌아온 장면과 투지는 돋보였으나 경험 부족을 여실히 증명한 한 판이었다.
데뷔전에서 패배의 쓴 맛을 봤지만 신현표는 오히려 이를 보약으로 여기겠다고 말한다. 좋은 경험을 쌓았으니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킥앤펀치는 성수동의 한 체육관에서 회복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신현표를 만나 지난 시합에 대한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첫 경기를 치른 소감을 듣고 싶다.
신현표(이하 신): 시원섭섭하다. 앞으로 2년간 더 큰 시합을 이겨내야 하는데 첫 시합을 이렇게 끝내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지난 시합에서 초반에 잘 싸우다 결정적인 하이킥을 허용했는데 이후에 흔들렸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신 : 처음 경기를 시작하면서 앗카 선수의 몸을 잠깐 잡았는데 순간 테이크다운(넘어뜨리는 기술)은 쉽게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거리를 두고 타격을 테스트 해보고 싶어 무리하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하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는 10개월간 준비한 것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 상대방의 킥을 허용하는 순간 ‘아차! 내 판단미스구나’ 라는 느낌이 스쳤다. 하이킥을 맞고 일어서면서 다리를 잡고 테이크다운을 시도해 볼 수 있었지만 다시 한번 내 머리 속에는 조금이라도 타격전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욕심이었다. 킥을 허용하고 나니 정신은 더 번쩍 들었지만 이상하게 몸에 기운이 없었다. 그때 ‘링 경험’이 뭔지 깨달았다. 상대방은 이기기 위해 올라왔는데 나는 테스트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 이었다. 그건 내 자만이었다.
스스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신 : 모든 것을 기초적인 부분부터 늘 해오던 방식대로 훈련에 몰입할 것이다. 다만 스파링을 할 때 강도를 높여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 기량을 점검해보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실전에서 테스트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해도 될 만큼 강도 높은 스파링을 해 경험부족을 보완하겠다.
그라운드 기술보다 타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유효한가?
신 : 그렇다. 내가 뛴 경기의 전 시합도 타격위주로 1라운드 만에 끝났다. 요즘 추세는 타격전이다. 내가 그라운드 기술에 더 관심이 가긴 하지만 흐름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데뷔 전에 일본에서 함께 운동했던 프라이드, 슈토 등 타 대회에서 뛰는 선수들로부터 종합격투기도 결국 타격위주로 가게 될 것 이라는 조언을 들었고 훈련 때도 타격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라운드 기술 또한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있다.
경기 후 앗카 선수와 이야기를 나눈 게 있나? 그 밖에 당시 히어로즈 대회 에피소드도 이야기 해 달라
신 : 앗카 선수와 특별히 대면은 하지 못했다. 경기 후 다른 선수들의 시합을 보고 싶어 바로 관중석으로 가 경기를 지켜봤다. 대회가 완전히 끝나고 타니가와 K-1 프로듀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는데 다음 경기는 빨리 잡힐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타니가와의 제스쳐가 결코 ‘잘 했다’는 의미로 보이지는 않았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신 : 한국에 도착해 부모님을 찾아뵙고 에이전트와 이틀간 낚시를 다녀왔다. 그리고 이틀간 읽고 싶었던 책을 구해서 읽었다. 그리고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히어로즈 대회 전 부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신 : 시합 전에 완벽한 몸 상태로 링에 올라가는 선수는 절반에 불과하다. 그 만큼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시합에 임한다. 같은 소속사의 김경석 선수도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두 번째 경기 때 엄지발가락 뼈에 금이 간 상태에서도 강한 의지로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선수들이 시합을 치른 후에 부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 점은 옳다고 생각하나?
신 :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도저히 시합에 뛸 수 없는 최악의 몸 상태로 링에 올라 투지를 보여주는 선수들도 있다. 부상때문에 시합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핑계 대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합 때 싸워보고 싶은 선수는?
신 : 강한 선수다. 그래야 내 기량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한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럴수록 내 실력을 정확하게 판단하는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K-1 관계자들이 ‘학구파 선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들었다. 여기에 무슨 연유가 있나?
신 : 보통 신인 선수들은 작성해야 할 계약서가 많다. 그 문서를 에이전트나 통역사 들이 도와주는데 나는 한문으로 모든 서류를 직접 작성했다. 그래서 타니가와 프로듀서가 운동선수가 언제 이렇게 공부를 했느냐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워낙 매너가 좋으신 분이라 그냥 예의상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고등학교 다닐 때 씨름부 감독님이 운동선수가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천자문과 영단어를 열심히 암기하곤 했다.
근 1년가량 격투기 선수로 변신을 준비 하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신 : 아직 스폰서가 없다 보니 에이전트가 사비를 털어 도와주고 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많은 돈을 쓰면서 운동을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이러는 건 당연 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스폰서도 생기지 않겠는가. 에이전트도 내가 성공하기 전까지 마음 놓고 소주한잔 마실 상대가 없다고 한다. 첫 시합에서 이기지 못해 에이전트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다.
향후 훈련 일정과 출전 계획은?
신 : 약 2주 동안 우리나라 에서 운동을 한 후 일본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5월 12일 열리는 다음 히어로즈 대회 출전을 예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신 : 내가 충분히 노력했다는 다음 시합에서는 이길 것이고 게을렀다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패할 것이다. 팬들은 결과를 보고 판단을 하실 것이다. 이기면 잘했다고 응원 해주시고 패하면 질타를 부탁드린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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