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천재론]<1>성실성으로 세계수영 제패 박태환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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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박태환의 경기 시작전 인터뷰 (2007/03/25)
동영상 촬영 : 전 창 기자

아테네 올림픽이 한창이던 2004년 8월 14일.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예선에 출전한 15세 소년 박태환이 스타트블록 위에 섰다. 출발 버저 소리가 나기만 하면 튀어 나가려고 크라우칭(crouching) 자세를 취한 박태환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뿔싸! 그만 중심을 잃은 박태환은 버저가 울리기 전에 풀로 떨어지고 말았다. 실격이었다.

2004년 서울 대청중 3학년이던 그가 국가대표선수에 선발되자 많은 수영선수 학부모들이 “형평성에 문제 있다”고 항의에 나섰을 정도로 그는 수영에 소질이 있는 그냥 그런 선수였다. 그는 한국 기록을 단 한 개도 세우지 못했을뿐더러 그해 국내 랭킹도 1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김봉조(60) 씨는 “국내 대회에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영법이 안정됐고 당장의 기록보다는 솔직히 어린 나이라 잘만 지도하면 큰 물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대표선수로 선발했다”고 최근 털어놨다.

실제로 박태환에게 서울대 문용린 교수팀이 개발한 MI 적성진로진단검사를 받게 한 결과 그의 재능은 평범함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

검사결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8개 항목의 점수를 평균 50점(편차 10)으로 환산한 ‘T점수’에서 박태환은 언어능력(56.47) 신체운동(56.44) 인간친화(51.48) 공간(51.32) 자기성찰(51.2) 등에서 평균치를 조금 넘는 적성 점수를 받았다. 자연 친화(45.18)는 편차를 감안해 보통 정도였고 음악(40.72)과 논리 수학(36.09)은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박태환에게는 특이점이 있었다. 적성별 능력, 성취, 흥미의 상관관계를 따져 보니 신체운동 적성에서 성취는 80점 만점에 78, 흥미는 60, 능력은 46을 기록해 편차가 매우 컸다. 보통 능력이나 흥미가 있어 성취가 이뤄지는 법인데 박태환의 경우 성취동기가 남달라 흥미와 능력을 압도했다.

대교심리진단센터의 김영선 연구원은 이를 “박태환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고 성취를 위해 스스로 극복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수영 담당으로 10여 년 동안 박태환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자는 “맞다, 그렇구나”라고 무릎을 쳤다.

박태환과 친분이 있는 한 수영 선수는 “태환이는 스스로 넉넉지 못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애송이 박태환이 세계 1인자로 진화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2년 7개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는 세상의 ‘웃음거리’에서 ‘영웅’으로 거듭났을까?

일반 성인 평균(4000cc)의 2배에 육박하는 7000cc에 달하는 폐활량, 뛰어난 부력, 놀라운 좌우 밸런스의 일치. 박태환은 남들보다 좋은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가 세계를 제패한 이유를 설명하긴 부족하다. 신체조건만 보자면 박태환은 세계 정상급 경쟁자들에 비해 오히려 열세다. 183cm의 신장은 보통 2m에 육박하는 서구 선수들과 경쟁하기에 부족하다. 폐활량은 크지만 4세 때부터 천식을 앓아 온 그는 지금도 이따금 기침을 해 댄다. 그래서 경기 중 고개를 90도만 돌리는 이상적인 호흡을 못하고 130도까지 돌리는 불필요한 동작을 한다. 유치원 시절 친구 집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부러진 오른팔은 약간 휘어 정확한 입수 각을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된다.

박태환을 지도해 온 지도자들은 그의 성공요인이 정신력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는 성실성이다. 4세부터 수영을 시작해 유치원보다는 서울 강남의 계몽문화센터 수영장에 등교하는 일이 더 많았다. 초등학교 때 훈련시간인 2시간 내내 경기에 나선 것처럼 전력투구하자 부친인 박인호(56) 씨가 “태환아, 훈련 후반부에 기록 재는 30분만 전력투구해라”라며 안쓰러워했을 정도.

성실해서 세계를 제패했다. 그렇다면 천재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 아닌가?

박태환이 같은 또래의 다른 선수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약점을 장점으로 바꿨다. 이건 성실함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태환의 실수는 비단 아테네 올림픽 ‘풍덩’ 사건만이 아니다. 2005년 11월 2일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 자유형 남자 1500m. 1년 전 아테네 올림픽 때와는 달리 그동안 쇼트코스(25m 풀) 세계수영월드컵 시리즈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 기록으로 보아 금메달 전망이 매우 밝았다.

실제 박태환은 경쟁자인 장린(중국)보다 경기 내내 1m가량 앞서 나갔다. 하지만 박태환은 ‘이겼다’라는 생각에 터치판을 천천히 두드리는 바람에 장린에게 0.05초 차이로 금메달을 내줬다.

박태환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해요. 저와 저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올림픽 실수 뒤에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스타트 연습을 했어요. 동아시아대회 때 터치판 실수도 정말 멍청했죠.”

박태환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다. 경기를 앞둔 박태환에게 ‘이번 대회 목표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면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제 기록을 앞당기는 것이 1차 목표고요…어쨌든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진 정말 관용구다. 그의 속마음은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의 그 다음 말에 있다.

“유릴 프릴루코프에게 계속 뒤졌으니까 이기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상인 해킷과 함께 뛰어서 영광이지만 한번 도전해 볼게요.”

경기 직전까지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자기관리기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또 박태환은 매번 큰 경기를 앞두고 자신의 미니 홈피에 ‘태환아, 이번 경기는 즐겨라!’라는 문구를 띄운다. 일종의 자기 암시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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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재능 키웠다

수많은 국제대회에 출전

단점 찾아 어김없이 고쳐

수줍음 많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박태환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그가 뛰어놀 수 있는 마당과 그의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해 준 스승들을 만났기 때문.

박태환은 역대 어떤 국내 수영선수들보다도 단기간에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아 왔다. 대한수영연맹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쇼트코스 수영월드컵을 대전에 유치했다. 매년 가을과 겨울에 열리는 이 대회는 7, 8개국을 순회하는 시리즈 경기로 대회 유치 국가는 의무적으로 자국 선수를 다른 국가에서 열리는 시리즈전에 출전시켜야 한다. 박태환은 생애 두 번째 국제대회에 참가한 2004년 11월 호주 멜버른대회 자유형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그러자 수영연맹은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전대회 이외에 외국 대회 1곳씩만 출전시켰지만 첫 출전에 메달을 따낸 박태환은 전체 대회에 출전시켰다. 대단한 특혜였다. 박태환은 이처럼 많은 국제대회를 통해 자신의 단점과 실수를 발견했고 다음 대회엔 어김없이 이를 고치며 기록 단축에 불을 댕겼다.

스승들의 힘도 크다. 유치원 시절부터 박태환을 지도하던 노민상 수영국가대표팀 감독은 박태환이 재능을 보이자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을 졸라 대표팀에 들어가도록 했다. 대표선수가 되면 자기가 직접 가르칠 수 없게 되지만 먹을거리가 좋은 태릉선수촌에서 지내야 젓가락 같은 박태환의 몸에 근육이 붙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2004년 멜버른 쇼트코스 수영월드컵에서 첫 국제대회 메달(은)을 딴 것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 덕이다. 당시 박태환은 1500m 경기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연습을 유심히 지켜본 김한수 대표팀 코치가 추가로 참가 신청을 했고 박태환은 은메달을 따내며 1500m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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