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5일 여자 프로농구 겨울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 헹가래를 받다 선수들이 짓궂게 손을 놓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손가락 인대가 늘어났다.
“그동안 너무 고생시켰다고 선수들이 장난을 쳤나 봐요. 앞으로는 더 힘들게 해야겠어요. 허허….”
영광의 상처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여긴 이 감독은 우승에 대한 부담감으로 불면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체중이 7kg이나 빠지기도 했다.
“시즌 전부터 다들 우승한다고 하니 얼마나 속을 태웠겠어요.”
○ 철저히 실력 위주 기용… 실수 땐 즉시 교체
신한은행은 올 시즌 ‘레알 신한’으로 불렸다. 전주원과 태즈 맥윌리엄스에 새로 영입한 간판스타 정선민과 일본에서 활약한 최장신(202cm) 하은주가 가세한 때문.
개성이 강한 스타가 많아 오히려 조직력이 흐트러질까 걱정한 이 감독은 어떤 배려도 없이 실력 위주 기용으로 팀을 이끌었다.
“아마 내게 서운하고 속상한 때가 많았을 겁니다. 절대로 이름 갖고 농구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누누이 강조했어요.”
주전이라도 팀워크를 해치거나 어이없는 실수를 하면 가차 없이 벤치로 불러들여 무섭게 혼냈다.
하은주는 신세계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출전 시간이 적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 이 감독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꾸짖었다. “다른 언니들도 군말 없이 지내는데 배가 불러 그러냐.”
묵묵히 기회를 엿본 하은주는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골밑을 굳게 지키며 승리를 거들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했던 정선민 역시 예외는 없었다. 개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던 그였지만 이 감독 밑에서는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주력했다.
시즌 때 발가락에 금이 갔던 그는 주사를 맞으며 코트에 서는 투혼을 보였다. 이 감독은 겉으로는 정선민에게 쌀쌀맞을 정도로 차갑게 대했지만 위성우 코치와 트레이너를 통해 정선민의 컨디션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이며 팀을 위해 뭉치고 희생하라고 했죠.”
○ 열심히 뛰면 출전 보장… 식스맨 적극 키워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에게는 출전 시간을 보장하면서 신예 최윤아 진미정 선수진 이연화 등 식스맨을 키웠다.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든 이런 리더십이 바로 신한은행을 통합 챔피언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 감독은 우승의 기쁨을 즐길 여유도 없이 벌써부터 여름리그 구상에 바쁘다. 경기 안산시 숙소에 머물며 훈련 계획, 전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헹가래 받고 떨어질 때 다음 시즌 걱정이 되더라”는 그의 말이 괜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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