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의 은어 ‘깍두기’는 연습경기를 할 때 어느 한 팀에 속하지 않고 어떤 팀이건 공격에만 가담하는 선수. ‘총알받이’는 상대 프리킥 때 심판 휘슬과 함께 수비벽에서 튀어 나와 키커가 찬 공을 몸으로 막는 역할을 하는 선수를 일컫는다.
프로축구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통역 김유진(23·사진) 씨는 궁리 끝에 깍두기를 ‘뉴트럴 플레이어(neutral player)’로, 총알받이를 ‘컷아웃(cutout)’으로 하는 제대로 된 영어 표현을 찾아냈다.
K리그 14개 구단 중 유일한 여자 통역인 김 씨는 말하자면 ‘축구, 영어로 놀자’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스위스 출신인 부산 앤디 에글리 감독의 통역 모집 때 지원해 합격하면서 ‘남성 스포츠에는 남성 통역’이라는 관례를 깼다.
김 씨는 준비된 스포츠 통역 요원. 어릴 때 호주에 2년 반 거주했고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한국외국어대 국제대학지역원에서 북미 정치를 공부했다. 태권도 공인 3단이기도 하다.
“통역은 그 전에도 많이 했는데 좀 더 활동적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는 게 축구단 지원 이유. 하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하프 타임 휴식 시간에 통역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감독이 흥분한 상태에서 속사포처럼 선수들에게 쏘아대는 것을 감정까지 실어 전달해야 하거든요. 주로 작전 지시인데 전반전 상황을 속속들이 꿰고 있지 않으면 통역이 안 돼요.”
통역 5개월여 만에 축구 전문가가 다 됐다. 지금은 스리백(수비 3명)과 포백(수비 4명) 포메이션의 장단점도 알게 됐고 각기 다른 포메이션에서 어떻게 공수 작전을 세워야 하는지도 안다는 것.
“사람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재밌다”는 그는 “나중에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해 보고 싶은데 에글리 감독님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진출해 보라고 권하고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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