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이 있는 공식 기자회견이 아니었고 선수를 오랫동안 붙잡아 둘 수 없는 상황에서 믹스트존에서 대기하던 수많은 각국 취재진 중 한국 기자들이 나서서 김연아를 붙잡고 우리말로 인터뷰했다. 일본 기자들은 동시통역 요원을 옆에 세워 두고 내용을 받아 적었다.
안달이 난 것은 서양 기자들. 기사 송고는 촉박한데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오죽 답답했을까. 백발이 성성한 한 미국 기자는 “영어 통역은 왜 없나. 30년 넘게 대회를 취재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애꿎은 일본 진행 요원을 붙잡고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1, 2위를 한 일본의 안도 미키(20)와 아사다 마오(17)도 믹스트존에서 자국어로만 인터뷰했다.
100년이 넘는 세계선수권 역사상 동양 선수들이 1∼3위를 휩쓴 것은 이 대회가 처음이었기에 갑자기 영어가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서양 기자들이 당혹해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황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김연아에 대한 심도 깊은 영어 기사가 줄어들게 됐으니 득이 될 것은 없는 노릇이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새로 맡은 IB스포츠가 2일 김연아에게 영어 개인교습을 붙이겠다고 한 것은 그래서 반갑다. 월드 스타로 키워보겠다는 IB스포츠의 의지가 읽힌다.
한국은 특히 빙상 종목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될 재목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선수의 영어 구사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더 큰 무대를 목표로 한다면 이젠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능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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