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도시 뒷골목에서 맨몸으로 노는 아이들도 있다. 쿠션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된다. 동네 공원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거나, 담장과 담장을 휙~ 한번에 날아간다. 지붕과 지붕을 가볍게 훌쩍 뛰어넘는 프로도 있다. 원, 세상에! 8층 건물 옥상에서 5층 건물 옥상으로 고양이처럼 가볍게 뛰어내리는 아이들. 바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신종 익스트림스포츠 야마카시(Free Running·파쿠르)다.
○ 야마카시는 ‘초인’ 의미 아프리카 말
야마카시란 아프리카 랑갈라어로 ‘강인한 사람’ 즉 ‘초인’을 뜻한다. 일본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1990년 프랑스 젊은이들이 맨몸으로 건물 오르기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에게 도시의 모든 구조물은 다 놀이 대상이다. 건물 오르기는 나무 타기나 똑같다. 담장을 뛰어넘는 것은 개울을 훌쩍 뛰어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한국엔 2003년 4월에 들어왔다. 김영민(30) 김영수씨(27) 등 몇몇 마니아들이 인터넷카페(cafe.daum.net/yamakasikorea)를 만들고 보급에 나선 것. 지난해 영화 ‘13구역’이 히트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영화 13구역엔 야마카시 창시자 중의 하나인 데이비드 벨이 직접 출연해 각종 묘기를 펼쳤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고층 건물을 맨손으로 기어올랐다. 기계체조 선수보다 더 현란한 텀블링, 유도선수보다 더 부드러운 낙법, 거미인간보다 더 능숙한 건물 타기….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현재 카페 회원수만 4만3000여명.
‘야마카시’나 ‘프리러닝’ ‘파쿠르’는 이름만 다르지 다 똑같다. 창시자 그룹이 분화되면서 이름도 달라졌다. 가령 1인자 데이비드 벨이 이끄는 그룹은 ‘파쿠르’라고 하고, 여기서 떨어져 나온 2인자 세바스챤 푸캉이 이끄는 그룹은 ‘프리러닝’이라고 하는 식이다. 야마카시는 현재 프랑스 일류고수들이 모인 클럽 이름이기도 하다. 2000년 프랑스에서 개봉된 영화 ‘야마카시’로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엔 7명의 실제 야마카시가 ‘현대판 의적’으로 등장한다. 컴퓨터그래픽, 스턴트 맨, 와이어 등은 전혀 쓰지 않는다. 100% 맨몸 액션. 아이들은 그 장면에 그만 침이 꼴딱 넘어간다. 숨이 막힌다. 캐논 디지틀카메라 CF에서 카메라를 들고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것도 창시자 중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데이비드 벨이다. 그도 역시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맨몸 연기를 펼쳤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 초반부 추격전도 마찬가지. 야마카시 2인자 세바스챤 푸캉이 건물과 건설 장비를 훌쩍훌쩍 뛰어넘는 묘기를 펼친다.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엔 젊은이들이 야마카시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공원이 있으며 전국 규모의 대회도 있다.
○ “전용훈련장과 아카데미 만들고 싶어”
한국 야마카시 수준은 아직 본고장 유럽에 비해 낮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고공 점프로 건너뛰거나, 고층건물을 기어오를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예술성도 못 미친다. 실력을 기를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공원이나 도시 고층건물 주변의 빈 공간 등을 주로 활용한다. 김영민 다음카페 대표는 “전용훈련장과 아카데미(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다. 비보이들처럼 우리들만의 공연도 하고 싶다. 야먀카시 회원들 축제인 전국대회도 5월 개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라고 말한다.
야마카시 마니아 중엔 중고생들이 유난히 많다. 놀이공원에서 청룡열차나 바이킹을 탄 것처럼 기분이 짜릿하다는 것.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즐기는 10대들 특성도 한몫한다.
2년 경력의 중학교 조정선수인 정성환군(14)은 “TV에서 처음 보고 ‘저건 내꺼’라는 필이 확 왔다. 현재 내 인생에서 이걸 빼면 아무것도 없다. 이건 해본 사람만 안다. 너무너무 좋다.”며 몸 풀기에 바쁘다.
3년 경력의 대학생 노국래군(20)은 “우슈(1단)를 하다가 야마카시 재미에 빠졌다. 공중에 떠있을 때, 귀에 스치듯 들리는 바람소리가 날 미치게 한다. 게다가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영원히 떠있을 것 같은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야마카시는 경쟁자가 없다.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며 “모든 일에 자신감이 커졌다”고 말한다.
다음카페엔 여자회원도 5~10%나 된다. 3년 경력의 카페관리자 안시내씨(24)는 “아직 근육을 키우는 초보단계다. 여자라서 못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남자들보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무섭긴 하지만 담장을 뛰어넘었을 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웃는다.
○ 도시문화가 낳은 짜릿한 스포츠
3년 경력의 대학생 김용희군(21)은 “얼마 전 왼쪽 발목을 다쳤는데 몸이 근질근질해 미칠 것 같다. 길을 가다보면 모든 게 놀이기구로 보인다. 누워서도 천장에 담벼락 같은 게 떠오른다. 담장을 훌쩍 넘었을 땐 온 몸에 자신감이 펄펄 넘치는 걸 느낀다. 하루빨리 나아서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싶다”며 손목을 풀었다.
놀이는 변한다. 기성세대들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추구했다. 요즘 아이들은 ‘더 짜릿짜릿, 더 아찔아찔, 더 아슬아슬’을 즐긴다. 더 새롭고, 더 신기하고, 더 복합적인 것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비보이나 야마카시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이것들은 도시가 낳은 놀이다. 기성세대에게 도시는 ‘복잡하고 숨 막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도시는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이다. 건물은 나무이고, 콘크리트 광장은 들판이고, 아스팔트도로는 논둑길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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