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그물을 가위로 잘라 내는 ‘우승 세리머니’.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림을 흔들며 고함을 질렀다. 평소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우지원(34·사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3일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 꽃미남과 황태자
193cm의 키에 군살 없는 몸매, ‘주먹만 한 얼굴’. 우지원은 잘생겼다. 대학 시절부터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92년 1월 경복고 3학년 때 연세대 소속으로 농구대잔치에 나갔어요. 기아랑 맞붙었는데 당시 기아에는 허재, 강동희 등 그야말로 스타가 즐비했고 연대에도 문경은, 이상민 등 뛰어난 선배가 많았죠. 그런데 최희암 감독님이 저를 내보내면서 편하게 슛을 쏘라고 하셨어요. 건방지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기회가 오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더라고요. 그날 지긴 했지만 꽤 많이 넣었어요.”
다음 날 깨어났을 때 그는 스타가 돼 있었다.
그의 대학 시절 연세대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런 팀에서 그가 ‘궂은일’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우아한 폼으로 적당한 시기에 3점슛을 넣어 주면 팬들은 열광했다. ‘코트의 황태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유재학과 마당쇠
“솔직히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감독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스타 의식’을 버리라는 말씀에 제가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조금씩 몸싸움과 악착같은 수비 등 음지의 역할에 익숙해져 갔다.
“우승하고 난 뒤 KTF 신기성과 통화를 했는데 ‘형은 별로 중요한 때가 아닌데도 골 넣을 때마다 오버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행동이 팀에는 힘이 되고 상대를 거슬리게 하는 건데…. 나름대로 성공했죠. 하하.”
우지원은 올해 처음으로 식스맨상을 받았다. 유 감독이 그를 ‘마당쇠’로 만들었다.
○ 첫 우승 그리고…
프로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우지원은 KTF와의 챔피언결정전 내내 투혼을 불살랐다. 7차전 때는 고비마다 터뜨린 3점슛 3개를 포함해 14득점을 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처음 맛본 우승은 그래서 더 달콤했다. 우승 세리머니는 ‘10년간 쌓였던 한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부산과 울산을 오가느라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집에는 아예 못 갔어요. 우승하는 날도 저 대신 팬클럽 회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으로 아내에게 우승 반지를 선물하게 돼 체면이 섰어요.”
우지원은 2000년 만난 이교영 씨와 2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지금은 네 살짜리 딸 서윤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아직 체력은 자신 있어요. 10분 출전한다면 그 시간 동안 40분 뛸 힘을 쏟아 부으면 되지 않을까요. 우승을 하고 나니 그동안 해 왔던 농구가 새롭게 보여요. 후배들 챙겨 가면서 코트에서 쓰러질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사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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