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강렬할 때 얼굴을 가릴 수 있어 늘 쓰고 다니지만 내성적인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른 선수와 불필요하게 시선을 마주치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깊숙한 모자 속에 감춰진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도 우느라 동료 한국 선수들이 축하를 위해 물과 콜라를 뿌리려고 달려드는 것도 모른 채 서 있다 몸이 흠뻑 젖었다.
첫 우승은 그만큼 감격스러웠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데뷔 5년 만에 첫 승을 거둔 김영(27).
그는 28일 미국 뉴욕 주 코닝CC(파72)에서 끝난 코닝클래식에서 합계 20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국내에서 5승을 했지만 LPGA투어에서는 103번째 출전 만에 맛본 황홀한 첫 경험이었다.
오랜 세월 정상을 꿈꿔 온 그는 사실 최근 2년 연속 불참했던 이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 없었다. “페어웨이가 좁아 장타를 치는 나와는 잘 맞지 않거든요.”
연습장도 좁아 불편하고 벌레가 많은 데다 호텔 방값도 비쌌지만 당초 예정된 투어 스케줄이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
2004년 공동 69위 이후 3년 만에 출전해 ‘망신이나 당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2라운드까지 12언더파를 치며 덜컥 선두권에 나섰다.
최종 4라운드에서는 8, 9번 홀 연속 보기로 위기를 맞았지만 마지막 5개 홀에서 버디 2개를 잡는 뒷심을 보였고 우승 경쟁을 벌인 김미현과 폴라 크리머(미국)가 자멸하는 행운까지 따른 끝에 그토록 원하던 정상에 올랐다.
또래보다 키가 컸던 그는 강원 춘천 봉의초교 5학년 때까지 농구선수를 하다 그만둔 뒤 아버지 김정찬 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강원체고 시절인 1997년 일본 최고 권위의 일본 문부상배에서 우승한 유망주였다.
1999년에는 프로 데뷔 1년 만에 한국여자오픈 챔피언에 등극해 스타 탄생을 알렸다. 당시 박세리, 낸시 로페즈 등을 꺾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본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관심 속에 그해 말 신세계와 연간 1억2000만 원의 파격적인 조건에 계약했다. 2001년 LPGA 2부 투어와 이듬해 Q스쿨을 거쳐 2003년 LPGA투어에 입성할 때만 해도 엘리트 코스만 걸어왔다.
하지만 LPGA투어에서는 메이저 대회에서 6차례 톱10에 들고도 번번이 뒷심 부족으로 정상과 인연이 멀었다. 지난 연말에는 그동안 총액 규모 40억 원 이상을 지원해 준 신세계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지난 2년간 47개 대회에서 예선 탈락은 두 차례뿐이었지만 정작 우승은 못했기 때문이다. 그를 아끼던 이 회장은 재계약하려 했으나 실무진의 반대가 컸다. ‘챔피언’만을 알아주는 냉혹한 현실을 실감한 김영은 ‘온실’ 밖으로 나오며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살아남으려면 더 잘 치는 수밖에 없잖아요.”
김영은 미국 투어에서 성실하기로 소문난 한국 선수 가운데서도 ‘연습 벌레’로 불렸다. 김미현은 “연습장에서 가장 늦게 떠나는 김영의 우승이 내 일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약점인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가방에는 늘 3kg짜리 납 주머니를 넣고 틈나는 대로 발목에 차고 다니며 근력을 키웠다.
코닝클래식 최종 성적 | |||
순위 | 선수 | 파 | 스코어 |
1 | 김영 | -20 | 268(68-64-68-68) |
2 | 김미현 | -17 | 271(68-67-66-70) |
폴라 크리머 | 271(66-68-66-71) | ||
4 | 김인경 | -16 | 272(67-69-68-68) |
베스 베이더 | 272(65-66-69-72) | ||
6 | 이선화 | -15 | 273(68-71-67-67) |
다이애나 달레시오 | 273(67-69-72-65) | ||
미야자토 아이 | 273(68-69-69-67) | ||
9 | 팻 허스트 | -14 | 274(75-66-68-65) |
내털리 걸비스 | 274(69-67-70-68) | ||
11 | 장정 | -12 | 276(68-70-71-67) |
박지은 | 276(68-71-67-70) |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B급선수 대접 이젠 더 이상 없겠죠”▼
“너무 좋은데 왜 자꾸 눈물이 나죠?”
김영(27)은 생애 처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우승하고 기자회견에서 연방 울먹거렸다.
특히 서러웠던 순간을 말할 때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진짜 우승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잘 안되더라고요. 우승 기회를 바보같이 놓친 적도 많았고요. 막상 하고 보니 믿어지지 않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소심한 성격 탓에 플레이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경기 도중 리더보드를 안 본다는 김영은 최종 4라운드 때는 14번 홀에서 처음 순위표를 쳐다봤다고. “다른 조인 (김)미현 언니가 선두더라고요. 어차피 다른 선수 의식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죠. 어차피 나와의 싸움이니 자신 있게 하면 막판에 기회가 올 것 같았죠.”
17번 홀(파4)에서 8번 아이언샷으로 컵 60cm에 붙여 버디를 잡았을 때 우승을 확신했다고 한다.
아버지 김정찬(63) 씨와 오빠 김대영(33) 씨가 번갈아 미국을 오가며 3남매 가운데 막내인 김영의 뒷바라지해 오고 있다. 다른 대부분의 한국 선수와 달리 미국에 집이 없어 휴식기에는 항상 귀국해 집에서 보낸다.
‘뒷심이 달려 우승을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 늘 속이 상했다는 김영은 “이제 B급이 아닌 A급 선수로 인정받을 것 같아요. 앞으로 선수 소개 때 코닝 챔피언 김영이라고 불리겠죠. 자신감이 붙었으니 계속 우승해야죠”라며 웃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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