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대답이었다. 황경선(21·한국체대)은 여자 태권도 웰터급(67kg 이하) 세계 최강. 지난달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웰터급 결승에서 에팡그 글라디스(프랑스)를 꺾고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으며 지난해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인 그가 태권도가 부담스럽다니….
태권도는 황경선의 스물한 해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직 태권도에 몰입하다 보니 공부할 시간도, 연애할 여유도 갖지 못했다.
1일 서울 송파구 오륜동 한국체대 교정에서 황경선을 만났다. 연분홍색 티셔츠와 흰색 반바지 차림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여대생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하루는 여전히 치열했다.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한숨 쉬어갈 만도 하련만 7월과 9월에 대표선발전과 국제대회를 앞두고 있어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태권 소녀’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 나의 하루: 오전 6시 기상 오전 수업 받고 오후 훈련
매일 매일이 똑같아요. 아침 6시에 일어나 트랙을 뛰고 오전 수업 받고 잠시 쉰 다음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태권도 전술훈련을 해요. 오후는 자유시간이지만 8시까지 돌아와야 해 친구들과 학교 부근에서 군것질하는 게 전부죠. 그나마 경기를 앞두면 저녁에도 야간훈련을 한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경기 구리시에 사는 가족을 만나는 건 주말뿐이에요.
여섯 살 때 속셈을 배우러 갔다가 태권도를 함께 가르쳐 준다는 얘기를 듣고 얼떨결에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관장님의 권유로 선수가 됐죠. 전국대회에서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어요. 그러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4강에서 중국의 뤄웨이에게 져서 동메달에 머물렀을 때 눈물이 나더군요. 패했다는 게 분하기도 했고 오직 1등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죠. 메달 색깔은 달라도 국가대표팀 선수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요.
○ 슬럼프: 만사 귀찮다가도 다시 태권도 하고 싶어져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운동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슬럼프에 빠지곤 해요.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만사가 귀찮아지죠. 그래도 태권도가 저의 운명인 모양이에요. 한없이 늘어져 있다가도 다시 태권도를 하고 싶어지더군요.
○ 사랑&요리: 미팅 한 번 제대로 못해 봤지만…
대학 생활 3년이 됐지만 아직 미팅 한 번 제대로 못해 봤어요. 친구들은 많지만 애인은 없어요. 드라마 같은 사랑도 해보고 싶은데….(웃음) 태권도 말고 요리를 배우고 싶어요. 빵을 직접 구워 가족과 애인에게 만들어 주는 상상도 해보죠.
○ 미래: 스포츠 외교관 꿈꾸는 21세 대학 3년생
나의 미래를 위해 학점 관리는 철저히 해요. 최소한 B학점 이상은 받고 있죠. 앞으로 태권도 지도자보다는 스포츠 심리학이나 스포츠 외교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요. 올해부터 저녁때마다 영어 단어 한두 개는 꼭 외우려고 노력하죠. 해외에 나가서도 능수능란하게 영어회화를 하는 수준이 돼야죠. 10년 뒤요? 결혼한 주부이자 스포츠 전문가가 돼 있지 않을까요.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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