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고… 그 외국인 잭 니클로스는 우상이 되었다.
그로부터 21년의 세월, 그의 앞에서 그의 기술로 우승을 했다.》
1980년대 중반 16세의 ‘섬마을 소년’은 역도를 하다 낯선 골프를 시작했다.
허름한 연습장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손바닥이 성할 틈도 없이 클럽 헤드가 닳아 못쓰게 될 정도로 공을 쳐대던 그는 체육 교사에게서 책 한 권을 건네받았다.
메이저 18승을 포함해 73승을 올린 ‘필드의 전설’ 잭 니클로스(67·미국)가 지은 ‘골프, 나의 길’이란 교습서였다. 1976년에 처음 발간된 이 책에는 그립부터 백스윙, 폴로스루까지 니클로스를 최고로 만든 골프의 기본 기술이 담겨 있었다.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줄도 몰랐던 소년은 틈만 나면 한글 번역서를 붙들고 지내더니 나중엔 니클로스의 레슨 비디오테이프까지 구해서 보고 또 봤다.
그로부터 21년이 흘러 그는 자신의 우상 니클로스에게서 우승 트로피를 받으며 어릴 적 꿈을 이뤘다.
주인공은 ‘탱크’ 최경주(37·나이키골프).
○니클로스 “자네가 챔프다, 자랑스럽다”
전남 완도군 출신인 최경주는 4일 독학으로 골프를 익힐 때 희망을 주었던 니클로스가 주최한 메모리얼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그가 마지막 18번 홀 그린을 빠져나올 때 니클로스는 “자네가 챔피언이다. 자랑스럽다”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존경하던 대선배의 진심어린 칭찬에 최경주는 “고맙다. 잭. 당신의 책을 읽으며 골프가 뭔지를 알았다”며 악수를 나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잭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 게다가 그의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것은 내겐 너무 큰 의미”라고 감격스러워했다.
니클로스가 쓴 책을 통해 전수받은 기술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메모리얼 통해 PGA 데뷔… 남다른 인연
최경주는 메모리얼토너먼트를 통해 처음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경험을 했기에 남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본투어에서 뛰던 1999년 상금 상위 랭커 자격으로 출전해 공동 24위(3언더파 285타)의 괜찮은 성적을 거두며 미국 무대 진출의 꿈을 키웠다. 당시 구입한 이 대회 로고가 새겨진 그린 보수기는 아직도 사용할 만큼 애정이 많다.
2001년부터 7년 연속 이 대회에 출전한 최경주를 유심히 지켜봤던 니클로스의 칭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4월 국내 방한에 앞서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니클로스는 “나는 KJ를 좋아한다. 그는 뛰어난 기량을 지녔으며 언젠가 메이저 대회에 우승할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니클로스의 ‘덕담’이 효험이 있었던지 최경주는 최고 스타들을 모두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최경주와 니클로스의 골프교습서 한 권을 통한 ‘사제 관계’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묘한 감동을 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스윙 교정 후 골프 편해져… 내주 US오픈도 기대 커져”
―우승 소감은….
“솔직히 우승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가 열심히 기도해 준 덕에 이런 영광이 돌아온 것 같다. 아내가 우승할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애덤 스콧이 2라운드에서 10언더파를 치는 것을 보고 나도 하루에 8언더파 정도는 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됐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하게 돼 너무 자랑스럽다.”
―뛰어난 선수가 많이 출전했는데….
“내가 여태껏 거둔 우승 가운데 가장 값지고 뜻 깊다. 마스터스와 출전 선수도 똑같고 출전 선수 규모도 거의 비슷하다. 자신감이 생겼다.”
―우승의 원동력은….
“대부분의 티샷을 페어웨이에 잘 떨어뜨려 세컨드 샷이 아주 편하고 쉬웠다. 쇼트게임도 아주 잘돼 볼이 어디에 떨어지든 적어도 파는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아 긴장도 안 됐다.”
―스윙 교정의 효과가 있었는지….
“우승까지 했는데 아직 멀었다고 하면 좀 그런 것 같고 롱게임에서 볼이 똑바로 가다 보니 골프가 편해졌다.”
―앞으로 목표는….
“14일 시작되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 대비해 휴식과 훈련을 해야겠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기대감이 커졌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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