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골프]몸의 핸디캡을 이겨낸 골퍼들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0분


《“어려움이 무척 많았을 텐데 믿어지지 않는다. 스윙이 훌륭해 대성할 것 같다.”(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골프 스타 어니 엘스)

“골프는 감각과 소리의 영향이 큰데 참 대단하다. 동료 선수들에게 귀감이 된다.”(아시아프로골프투어 칠라한 회장)

청각장애 프로골퍼 이승만(27)에게는 요즘 국내외에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주 아시아프로골프(APGA)투어 방콕 에어웨이스오픈에서 2000년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을 잃은 장애를 극복한 ‘쾌거’여서 더욱 값지다.》

11일 귀국 후 국내에 머물고 있는 이승만은 축하를 많이 받았지만 축하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입 모양을 통해 대충의 의미를 이해할 뿐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필드에서 우승 트로피까지 안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 이강근(59) 씨의 도움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야구를 하던 이승만은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에 애를 먹으며 결국 야구를 포기해야 했다. 그 대신 8세 때 골프를 시작했다. “당시(1988년)에는 아이들이 쓰는 클럽이 없었다. 일본에서 구입한 골프채로 시작했다. 성인 여성용 신발에 깔창을 여러 겹 깔아 신었고 장갑도 맞지 않아 뜨거울 물에 불린 뒤 끼어야 했다.”

첫 스승은 현재 일본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종덕 프로였는데 몸짓과 느린 말투로 이승만에게 기본기를 가르쳤다. 이승만은 10대 초반에 5년 가까이 겨울이면 100km 밤샘 행군과 지리산 극기 훈련을 3주 동안 실시해 체력을 길렀다.

타고난 집중력으로 골프 실력을 키운 이승만은 아마추어로 16승을 올린 뒤 천안북일고 2학년 때인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프로에 입문했다.

이승만은 주니어 시절부터 라운드한 날 반드시 복기를 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

“코스를 그린 뒤 티샷부터 퍼트까지 그날 플레이 내용을 담았다. 그러다 보니 코스 매니지먼트에 큰 도움을 받았다.”

비록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뛰어난 손 감각을 지닌 이승만은 갤러리의 잡음과 환호성에도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 SK텔레콤오픈 때는 수천 명의 관중을 몰고 다닌 미셸 위의 바로 앞 조였지만 전혀 흔들림 없이 경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프로골퍼라면 흔히 전문 캐디와 호흡을 맞추지만 이승만은 대회 때마다 하우스 캐디를 쓴다. 그에게 캐디는 그저 백을 운반해 주는 역할일 뿐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 곁에서 캐디가 잡아 주기도 할 텐데…. 매번 바뀌다 보니 그런 건 기대할 수 없다.”

한편 국내 프로골퍼 박부원(42)은 당뇨병으로 10년 넘게 투병하며 인슐린 주입기를 착용한 채 필드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프로 입문 15년 만에 첫 승을 거둬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된 그는 1992년 대회 막판만 되면 이상하게 체력이 떨어져 병원에 들렀다가 당뇨 진단을 받았다. 약물과 주사 치료를 받다 3년 전부터는 인슐린 투입기를 차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더운 날에는 배꼽 근처에 꽂은 주삿바늘이 빠지면서 다른 살갗을 찔러 깜짝깜짝 놀란 적도 많다.”

혈당 관리를 위해 항상 캐디 백에 사탕 30∼40개를 넣고 다닌다는 박부원은 “골프는 당뇨에 좋은 운동이다. 되도록 카트를 안 타고 걸어 다니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통산 5승을 올린 스콧 버플랭크(43·미국) 역시 당뇨 환자로 박부원처럼 미니 인슐린 펌프를 사용한다. 그는 9세 때인 1974년 갑자기 기절해 병원으로 실려가 제1(소아)형 당뇨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후 30년 넘게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아마추어와 프로 무대에서 이름을 날려 2002년에는 질병과 신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벤 호건 상’을 받기도 했다.

이달 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긴 트리뷰트에 출전한 15세 아마추어 소녀 매킨지 클라인은 선천성 심장 장애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도 필드를 지킨 의지의 골퍼. 두 개 있어야 될 심실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호흡 곤란으로 쉽게 지쳐 대회 때에도 카트를 타야 하지만 골프를 향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해 온 이들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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