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의 오리’ 미국 자존심을 깼다

  • 입력 2007년 6월 19일 03시 02분


▼카브레라, 우즈-퓨릭 추격 따돌리고 US오픈 우승▼

떡 벌어진 가슴과 살짝 나온 아랫배에 대머리….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심 좋은 아저씨 같은 그가 ‘최후의 승자’였다.

골프의 변방이던 아르헨티나의 앙헬 카브레라(37).

그는 18일 미국 피츠버그 인근 오크몬트CC(파70)에서 끝난 시즌 두 번째 메이저골프대회인 제107회 US오픈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최종 4라운드에서 1타를 줄여 합계 5오버파 285타로 세계 1위 타이거 우즈와 세계 3위 짐 퓨릭(이상 미국)의 공동 2위 그룹을 1타차로 따돌렸다.

카브레라는 미국 무대에서의 첫 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하며 126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챙겼다. 1967년 브리티시오픈 우승자 로베르토 데 빈센조 이후 40년 만의 남미 출신 메이저 챔피언.

줄담배로 긴장감을 털어낸 카브레라는 폭발적인 장타를 승리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날 300야드로 세팅된 8번 홀(파3)에서 3번 우드로 원온시킨 뒤 6m 버디 퍼트를 넣는 묘기를 보인 데 이어 드라이버를 12번 홀에서는 379야드나 보냈고 가장 까다롭다는 18번 홀에선 346야드를 날렸다.

반면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던 우즈는 3라운드를 선두로 끝내지 못했던 29개 메이저 대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를 이어갔다.

4타 뒤진 공동 7위로 출발한 카브레라는 15번 홀까지 3타를 줄이며 3타차 단독 선두에 나섰으나 16, 17번 홀 연속 보기로 우즈, 퓨릭에게 1타차로 쫓겼다. 18번 홀에서 파를 지켜 단독 선두로 경기를 끝낸 그는 라커룸에서 TV로 경쟁자 우즈와 퓨릭의 경기를 관전했다.

최종 18번 홀에서 퓨릭의 13m 버디 퍼트는 벗어났고 우즈의 9m 버디 퍼트가 컵 오른쪽 30cm에 멈춰 서자 카브레라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터뜨렸다.

제107회 US오픈 최종 성적
제107회 US오픈 최종 성적
순위선수스코어
1앙헬 카브레라+5285(69-71-76-69)
2짐 퓨릭+6286(71-75-70-70)
타이거 우즈286(71-74-69-72)
4니클라스 파스트+7287(71-71-75-70)
5데이비드 톰스+9289(72-72-73-72)
버바 왓슨289(70-71-74-74)
20앤서니 김+14294(74-73-80-67)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카브레라는? 캐디로 일하다 골프 입문… 유럽투어 3승▼

앙헬 카브레라는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기계공인 아버지와 똑같이 ‘엘파토’(스페인어로 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의 한 골프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거들기 위해 10세 때 캐디로 일한 게 골프와의 첫 인연. 당시 그를 눈여겨본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골퍼 에두아르도 로메로의 권유로 15세 때 골프에 입문해 1989년 프로로 전향했다. 로메로의 후원으로 유럽투어에 도전했으나 3차례의 실패 끝에 비로소 합격한 게 1995년. 그 후 꾸준한 성적 속에 유럽 투어 3승을 거뒀고 세계랭킹은 41위.

183cm, 90kg의 당당한 체구를 앞세운 ‘빅 히터’로 이름을 날린 그는 남미 특유의 다혈질 성격 탓에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을 때가 많았다. 지난해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6차례 톱 10에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페어웨이 안착률이 48%로 예선 통과자 63명 가운데 48위에 그쳤으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310야드(2위)의 장타에 힘입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출전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틀 동안 언더파를 치며 정상에 올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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