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야구의 붐 다시 불었으면…”
26일부터 9일간 제61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펼쳐질 ‘한국야구의 요람’ 동대문야구장.
거기에는 늘 그가 있다. 빡빡머리에 남루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으로 동대문야구장 내야석에 앉아서 고교선수들의 투구 하나하나와 타자의 스윙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 공수 팀이 바뀔 때면 바로 직전 상황에 대해 해설을 하기도 하는데 입담이 좋아 그의 주위엔 항상 사람들이 몰린다.
최기주(65·사진) 씨. 그는 50년간 한결같이 동대문야구장을 찾아 경기 기록을 하고 있어 일명 ‘야구박사’로 통한다.
흥인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 최 씨는 어느 날인가 친구들과 함께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동대문야구장에 갔다가 야구 기록에 빠져들었다.
“어떤 아저씨들이 종이에다가 그림도 아니고 글씨도 아닌 이상한 걸 적고 있는 걸 봤지. 바로 야구 기록지였어.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뒤로 어깨너머로 욕먹어 가며 기록하는 법을 배웠지.”
학창 시절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동대문야구장을 찾아 경기 내용을 기록하며 야구의 깊은 맛을 터득한 최 씨는 한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그때부터 아예 동대문야구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1958년부터 올해까지 50년 동안 그가 기록한 야구 기록은 대한야구협회의 도움을 받아 동대문야구장의 창고에 보관돼 있다.
얼마 전까지 야구장 인근 식당 일을 거드는 등의 일로 받는 얼마 안 되는 수고비로 생활을 해 온 그는 건강이 안 좋아져 그마저도 그만뒀다.
“야구박사 배고파, 하지만 야구장에만 나오면 배를 곯지는 않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식사 초대하는 야구팬이 아직 많거든”이라고 했다. 그는 혈혈단신이다. 친인척이 한 명도 없지만 그는 환갑잔치를 3번이나 했다. 신일고와 배명고 야구부 학부모들이 잔치를 열어줬고 동대문야구장 인근의 제일식당도 그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 동대문야구장에 대한 그의 소회는 어떨까?
“평생을 함께해 온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섭섭하지. 하지만 대체 구장을 많이 만들어 준다고 하니까 마냥 슬프지는 않아. 학생 야구 붐이 다시 일어나면 좋겠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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