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본보 9월 14일자 8면 톱기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대구상고 장효조는 배명고와 2-2로 맞선 연장 10회 안타를 치고 나간 뒤 이승후의 중전안타 때 홈으로 필사의 슬라이딩을 하며 결승점을 올렸다. 장효조는 홈 플레이트에서 기절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대회에서 타격 1위(타율 0.428)과 최다 안타(6안타), 우수선수로 3관왕을 차지한 그는 야구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국가대표를 거쳐 1983년 프로에 진출해 10년간 삼성, 롯데에서 뛰며 통산타율 0.331을 기록했다. 통산타율 0.331은 아직도 국내 프로야구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제61회 황금사자기가 열리고 있는 동대문야구장.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던 장효조 스카우트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아이고, 저게 타격이야?” “슬라이딩만 했으면 충분히 세이프인데 걸어서 들어오네. 쯧쯧.”
장 스카우트는 “30여 년 전에 비해 야구 환경은 좋아졌지만 선수들의 기량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요즘 고교 야구 선수들에게선 파이팅 정신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잔기술은 늘었지만 ‘한번 붙어보자’는 근성이 부족합니다.”
아마추어 야구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프로야구의 등장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들의 파이팅 정신 실종도 그 원인 중 하나라는 게 장 스카우트의 지적이다.
그라운드를 떠나 스카우트로 3년째. 장 스카우트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제는 야구를 보는 눈이 생겼다. 장효조를 능가하는 ‘야구 꿈나무’를 발굴하는 게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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