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도전 ‘아름다운 8년’

  • 입력 2007년 7월 5일 02시 59분


빗속의 기원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하루 앞둔 4일 밤 강원 평창군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원 전야제’에서 강원도민들이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평창 유치를 기원하는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평창=박영대  기자
빗속의 기원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하루 앞둔 4일 밤 강원 평창군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원 전야제’에서 강원도민들이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평창 유치를 기원하는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평창=박영대 기자
1999년 1월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기간에 김진선 강원지사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처음 선언했을 때만 해도 이를 곧이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한국은 동계스포츠 후진국. 강원 평창군의 인구는 4만6000여 명에 불과했다. 외국인이 발음하기에는 너무 힘든 도시명 때문에 북한의 평양과 헛갈린 것도 큰 약점이었다.

평창이 출사표를 내자 이듬해 10월 전북 무주군도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 경험을 내세우며 동참하면서 평창의 험난한 여정은 시작됐다.

이후 평창은 무주와 지역감정까지 개입된 치열한 경쟁을 벌여 천신만고 끝에 국내 유치 후보도시로 선정됐다.

국내 예선에서 너무 힘을 뺀 탓일까. 평창은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2010년 유치 경쟁에선 1차 투표에서 51표를 얻어 캐나다 밴쿠버(40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16표)를 압도했지만 과반수를 넘기지 못했다. 이어 열린 2차 투표에선 잘츠부르크 표가 모두 밴쿠버로 몰리는 바람에 평창은 53표에 그쳐 밴쿠버(56표)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의 낙선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스포츠 외교 일선에서 물러나는 내홍을 겪기도 했다.

다시 4년을 와신상담한 평창은 2014년 유치전에선 각종 조사 결과 경쟁 도시인 잘츠부르크와 러시아 소치를 제치고 당당히 선두주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통해 이제 평창은 세계 속의 평창으로 우뚝 섰다.

과테말라시티=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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