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쌘돌이’ 서정원(37)이 오스트리아 SV 리트에서 뛰다 최근 은퇴를 선언하자 전 소속팀 수원 삼성 관계자와 수원 시절 은사로 대전 시티즌 사령탑에 오른 김호 감독이 ‘러브콜’을 보냈다. 철저한 몸 관리와 탁월한 실력을 갖춘 그에게 지도자 수업을 시켜 주겠다며 코치로 오라고 했다. 하지만 서정원은 “마음은 고맙지만 아직은 유럽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축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긴장에서 벗어나 휴가를 즐기고 있는 서정원을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늘 똑같은 바가지 머리 스타일에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아직도 선수 티를 벗지 못했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 커피를 마셔도 되건만 “녹차라테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20년 넘게 축구선수 생활을 하며 몸에 밴 습관이다. 몸에 조금이라도 해로운 것을 입에 대본 적이 없단다.
“어렸을 때 공격수는 수명이 짧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그럴까’라는 오기가 발동했고 축구와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연계시켰죠.”
술은 물론이고 음료도 가렸고 음식도 몸에 좋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다. 아빠로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몸을 피곤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놀아 줬다. 그래서 “늘 애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기본만 잘 지켜도 선수 생명은 길어지죠. 선수의 기본은 컨디션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는 절대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기본을 지키기가 쉽진 않죠. 철저하진 않지만 저는 기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서정원은 8월 중순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유럽을 돌며 축구 공부에 들어간다. 가족들이 사는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잉글랜드를 오가며 유럽 축구를 속속들이 살펴볼 계획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는 축구 지도자 자격증 중 C급은 획득했고 B, A, P급까지 따겠다는 각오다. 짧게는 2년 반, 길게는 5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
“유럽에선 스포츠심리학과 스포츠의학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격증을 따기 힘들어요. 다양한 스포츠 과학 중에서도 요즘엔 스포츠심리학의 비중이 크죠.”
팀마다 스포츠심리 전문가를 영입해 선수들과 감독 간의 가교 구실을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고. 유럽에선 선수의 능력, 감독의 전술 전략도 중요하지만 서로 ‘소통’이 안 되면 팀워크가 깨진다는 믿음이 강하다.
“특히 한국 같은 곳에서 스포츠심리학은 더 중요합니다.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한국에선 감독들이 강압적이고 일방적입니다. 선수와 감독의 벽을 허문다면 선수들의 잠재력을 더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서정원은 자신의 경험만을 강조하는 감독이 아닌 제대로 된 지도자를 꿈꾼다. 거스 히딩크 러시아 감독과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비할 순 없지만 ‘최소한 축구란 이런 것’이란 걸 알고 ‘이해시켜 주는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이 되고 싶단다.
서정원은 “이제 축구로 치면 전반전을 마쳤을 뿐이다. 후반에도 전반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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