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잡초야구’ 마침내 꽃피우다… SK, 정규시즌 첫 우승

  • 입력 2007년 9월 29일 03시 03분


2000년 창단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들이 28일 LG와의 경기가 끝난 뒤 잠실야구장에서 미리 준비해 온 우승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2000년 창단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들이 28일 LG와의 경기가 끝난 뒤 잠실야구장에서 미리 준비해 온 우승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2000년 창단한 SK를 8년 만에 프로야구 정규시즌 첫 우승으로 이끈 김성근(65) 감독.

그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사령탑이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태어나 가라쓰고를 졸업한 뒤 1963년 대한해협을 건너 영구 귀국한 그는 기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거쳐 1982년 OB(현 두산) 투수 코치를 시작으로 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감독과 해태 코치를 거치는 ‘잡초’ 같은 야구 인생을 살아왔다. 김 감독이 몸담아 보지 않은 팀은 롯데와 한화뿐이다. 1999년 쌍방울과 2002년 LG 감독 시절에는 중도 퇴임의 아픔도 겪었다.

통산 1476승으로 역대 최다승 감독 기록을 보유한 김응룡(66) 삼성 사장과 비교하면 김 감독의 야구 인생은 더 초라해 보인다. 김 감독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사장은 양지에서 살아온 사람이고 난 음지에서만 놀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해태에서만 18년 동안 지휘봉을 잡아 한국 시리즈 9승 위업을 달성했고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2002년 우승으로 ‘V10’의 대기록을 세웠다.

반면 김 감독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2년 LG 감독 시절 정규 시즌에서 4위를 한 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올라간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다. 당시 김 감독은 김 사장의 삼성과 맞붙어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우승 한 번 못해 본 감독’이지만 김 감독이 ‘영원한 승부사’ 또는 ‘야구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9년 태평양 사령탑을 맡아 전년도 꼴찌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고 1996년에는 역시 전년도 꼴찌였던 쌍방울을 정규 시즌 2위에 올려 놓는 기적을 이뤄내기도 했다. 김 감독은 평소 “좋은 선수를 갖고 우승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달성한 우승이 진정한 우승이다”라고 말해 왔다.

재일교포 왼손 투수였던 김 감독은 고교 졸업 후 혼자 고국을 찾았다.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접었던 김 감독은 이때부터 오로지 야구에만 매달렸지만 한국말이 서툰 그를 반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스스로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높은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먹으러 다니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소신이 강한 것도 환영받지 못한 이유였다. 44년 전 김 감독이 한국을 찾았을 때 그는 물러설 길이 없었다. 야구가 아니면 살 길이 없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할 때 일부 언론은 ‘반쪽발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 말은 깊은 상처가 되어 가슴에 남았다.

이제 그를 ‘반쪽발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김 감독은 28일 LG와의 잠실경기를 7-2로 이김으로써 남은 5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이 감독을 맡은 16시즌 만에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한국시리즈는 ‘잡초’ 김 감독이 진정한 ‘야구의 신’으로 등극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한편 광주에선 ‘돌아온 거포’ 최희섭이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 6타점의 불방망이를 터뜨린 데 힘입어 KIA가 현대를 8-2로 꺾었다.

4타수 2안타를 기록한 KIA 이현곤은 타율 0.337로 타격 선두 양준혁을 0.001 차로 추격했다. KIA 선발 이대진은 5이닝을 3안타 4볼넷 2실점으로 막아 7승째를 올렸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팀 순위(28일)
순위승률승차
SK704650.603-
두산685320.5624.5
한화635320.5437.0
삼성595640.51310.5
LG576060.48713.5
롯데536530.44918.0
현대526810.43320.0
KIA487010.41222.5

▼‘우승 감독’ 김성근 인터뷰▼

―소감은….

“매직 넘버 얘기가 나오면서 우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1승이 참 멀더라. 좋은 경험했다. 선수들이 스스로 해보겠다는 의욕을 보인 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자발적으로 나선 선수가 많아 편안하게 야구했다.”

―단기전 승부는 미지수인데 어떻게 풀 것인가.

“상대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다. 원점으로 돌아가 시즌 중 부족했던 점을 되돌아보고 다시 시작하겠다.”

―정규시즌 우승의 원동력은….

“변화다.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변했다. 지난해 부임했을 때만 해도 선수들한테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 야구를 별 생각 없이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올해 초 오키나와 전지훈련을 통해 선수들이 확 바뀌었다.”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두산이 바짝 따라올 때는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오전 2∼3시까지 잠을 못 이뤘다. 시즌 중반 술을 끊었는데 오늘은 한잔해야겠다.”

―5경기가 남았는데….

“그동안 시합에 자주 나오지 못한 선수 위주로 오더를 짤 작정이다.

―거의 매일 출전 오더가 바뀌었다. 고참 선수들의 반발은 없었나.

“6월쯤 되니 연습 때도 그런 태도(반발)가 보였다. 선수들을 불러 놓고 ‘개인 플레이는 용납하지 않는다. 고참이건 신인이건 팀을 위해 뛰는 선수들만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 많은 선수가 달라졌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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