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꾼들은 산봉우리 하나로는 성에 안 찬다. 산 넘어 또 다른 산을 몇 개씩 넘고, 또 넘는다. 이제 하루 이틀 ‘무박 밤샘 산행’은 새로울 것도 없다. 이들은 고통의 산행을 통해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왜 사는 게 늘 이 모양인가? 왜 이렇게 답답한가?
스님들은 하안거나 동안거를 통해 그 해답을 찾는다. 도시인들은 가까운 산을 찾는다. 도시를 빙 둘러싸고 있는 ‘둘레 산 잇기 순례’를 하며 걷기 명상을 한다. 그들에게 가을 산행은 ‘추안거(秋安居)’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서울엔 불수사도북(불암산 507.7m∼수락산 637.7m∼사패산 552m∼도봉산 740m∼북한산 836.5m), 삼관우청광(삼성산 478m∼관악산 632m∼우면산 293m∼청계산 618m∼광교산 582m)둘레산 잇기가 있다.
대구엔 가팔환초(가산 901m∼팔공산 1193m∼환성산 811.3m∼초례봉 635.7m)와 성삼비앞(성암산 469m∼삼성산 668m∼비슬산 1083m∼앞산 659m)이 유명하다. 가팔환초는 서울의 불수사도북처럼 바위산이 많고 험하다. 반해 성삼비앞은 서울의 삼관우청광처럼 흙산이 많다. 경사가 완만하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지 않다. 가팔환초의 길이는 40여 km. 불수사도북과 큰 차이가 없다. 소요시간은 일반 산꾼의 경우 보통 20시간 안팎. 성삼비앞은 약 55km다.
대전 산꾼들은 보만식계(보문산 457.3m∼만인산 537.1m∼식장산 597.5m∼계족산 423m) 능선을 즐겨 탄다. 대전 남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져 동북쪽에서 끝나는 산줄기다. 길이는 약 50km. 지리산처럼 웅장하거나 설악산같이 기암괴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무엇보다 해발 600m 이하의 낮은 산들로 이어져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좋다. 천천히 걸어도 20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둘레산 잇기 산행은 보통 초저녁에 출발해 그 다음 날 오후에 도착하는 무박 2일 코스다. 헤드랜턴과 두툼한 옷은 필수. 중간에 마실 물과 먹을 것도 챙겨야 한다. 금방이라도 머릿속에 박힐 것 같은 하늘의 시린 별들, 산 아래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을 보는 즐거움은 밤 산행의 또 다른 재미다.
○ 산은 7개지만 용지봉 포함해 9산
산악 마라토너 윤왕용(47) 씨는 서울을 빙 두르고 있는 220km 산줄기(지도상 180km)를 55시간 24분 12초에 돌았다.
▶본보 10월 19일자 My Weekend 9면 참조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 &joy]서울 외곽주봉 220km완주 윤왕용
이 줄기엔 북한산 도봉산 등 크고 작은 산만 무려 26개. 봉우리로 치면 그보다 훨씬 많다.
대구 9산 종주는 대구 주위를 한바퀴 빙 돈다. 총거리 80km. 산은 정확하게 7개. 하지만 대구 산꾼들은 용지봉 등을 포함에 보통 9산으로 부른다.
코스는 시계 방향으로 대구월드컵경기장∼<5.6km>∼성암산(469m)∼<5.2km>∼병풍산(428m)∼<9.8km>∼상원산(669m)∼<3.4km>∼팔조령∼<5.1km>∼삼성산(668m)∼<7.4km>∼통점령∼<6.6km>∼헐티재∼<4.4km>∼비슬산(1083m)∼<11.6km>∼청룡산(794m)∼<5km>∼산성산(653m)∼<4km>∼용계리∼<3.8km>∼용지봉(629m)∼<5.9km>∼청계사∼<2.2km>∼대구월드컵경기장.
올 4월 종주대회에서 서승현(44) 씨가 12시간 43분으로 우승했다. 서 씨는 대전에 사는 공무원. 크로스컨트리 중심으로 한 달 300km 정도를 달린다. 마라톤 풀코스 2시간 57분 기록의 서브스리 보유자. 그는 “대구 9산 코스 중에선 병풍산∼상원산 임도(林道)구간이 호젓하고 인상적이다. 최근 3개월 동안 족저근막염으로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내년엔 기록을 앞당겨 보겠다”고 말했다.
대구 9산 코스를 처음 개발한 이태재(52) 씨는 “가팔환초 구간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등 험한 부분이 많아 제외했다. 대신 육산(肉山)인 성삼비앞 코스를 대부분 살렸다. 달려도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바닥이 좋다. 보통 팔조령∼헐티재 19.1km 구간에서 알바(길을 잃음)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대구의 내로라하는 산꾼 노재왕(43) 씨는 “9산 코스는 대구와 경북의 경계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4월 비슬산 부근엔 참꽃이 장관을 이룬다. 요즘엔 곳곳 억새밭이 볼만하고, 능선에서 멀리 보이는 가팔환초와 대구 주위의 경치가 일품이다. 팔조령∼헐티재 구간이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 힘들다.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2, 3명이 함께 몇 주에 걸쳐 돌아도 좋아
서울에서 대구 9산 종주를 하려면 금요일 저녁 KTX를 타고 대구에 내려와 대구월드컵경기장 주변 찜질방에서 쉰 뒤 토요일 아침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대부분 도시는 산줄기의 품 안에 있다. 그 속에서 도시는 끊임없이 웅웅거린다. 칭얼댄다. 산들은 묵묵히 지켜본다. 깜빡이는 불빛들을 바라본다. 도시인들은 늘 어지럽다. 메슥거린다. 사는 게 왜 늘 이 모양인가?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가? 적막강산. 천지간에 홀로 선 영혼. 산은 말이 없다. 산꾼들은 그 산등을 무심하게 넘는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부산의 5산 종주는 산성 잇는 역사산행
부산에도 5산 종주 코스가 있다. 동백섬을 출발해서 봉수대가 있는 간비오산(147.7m)을 거쳐 장산(634m)∼기장 아홉산(359m)∼철마산(605m)∼(고속도로 위 녹동교)∼금정산 고당봉(801.5m)∼백양산(641.7m) 코스다.
길이 약 65km. 부산을 시계 반대방향인 동쪽으로 휘돌아 서쪽으로 골인하는 입 터진 항아리 모양이다. 푸른 바다가 항아리 뚜껑인 셈이다.
능선의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지 않고, 주변 경치가 빼어나다. 장산에서 보는 부산 시내 야경은 아슴아슴하고 황홀하다. 보통 20시간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 곳곳에 산성이 많아 ‘산성 둘레 잇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제1회 부산5산 종주대회(bbu100.com)가 10일 밤 7시 동백섬에서 출발한다. 220여 명이 참가한다. 제한 시간 20시간. 시속 3.1km. 대회 사무국장 신영우(49· 011-1744-5832) 씨는 “바다와 낙동강이 한눈에 보일뿐더러 고려 조선시대의 산성을 비롯해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흔적이 수두룩하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근대 우리 민족의 상처가 아프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역사 산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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