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자프로골프의 ‘최강’ 신지애(19·하이마트). 올해 8승을 올리며 국내 남녀 프로를 통틀어 처음으로 시즌 상금 6억 원을 돌파했다. “빨리 해외로 떠나라”는 동료들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지만 정작 그는 “외국에 천천히 나가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굳이 해외 투어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어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 여자 프로골퍼의 해외 진출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양분된다.
올 시즌 미국LPGA투어는 31개 대회에 총상금 규모는 3236만1000달러(약 295억 원)에 이르며 JLPGA투어는 35개 대회에 27억8820만 엔(약 228억 원). 한국프로골프(KLPGA)투어는 19개 대회에 55억 원 정도. KLPGA투어 소속 프로 가운데 올해 미국LPGA에는 37명의 시드권자가 있으며 JLPGA투어에는 24명이 뛰고 있다. 다들 연초에는 이런저런 큰 꿈을 품은 채 국제선 항공기에 올랐지만 시즌이 막바지에 이른 요즘 속속 귀국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희비가 엇갈린다.
올 시즌 미국LPGA투어에서는 ‘땅콩’ 김미현(KTF)이 16일 현재 125만5348달러(약 11억4000만 원)를 벌어들여 한국 선수 최고인 상금 4위에 올라 있다. JLPGA투어에서는 전미정(투어스테이지)이 3주 연속 우승을 포함해 4승을 거둔 데 힘입어 1억748만1679엔(약 8억8000만 원)으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신지애의 상금을 단순 비교하면 미국LPGA투어에서는 상금 22위에 해당되며 일본에선 5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국내에서 ‘원맨쇼’를 펼친 신지애의 성적을 감안할 때 그 역시 세계 정상의 스타들이 ‘대박’을 노리는 미국 무대를 동경할 만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미국LPGA투어에서는 연간 30만 달러(약 2억7000만 원)의 경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뛸 때의 5000만 원보다 5배 이상 많이 들어간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항공비와 숙식비, 캐디의 주급(800∼1100달러)과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고액의 레슨비를 치르기도 한다. 스폰서 없이 상금만으로 버티려면 연말 상금 랭킹 30∼40위는 해야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 올 시즌 이 정도 성적을 거둔 한국 선수는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경비를 아끼려고 비행기 대신 차로 10시간 이상 이동을 하기도 하며 아버지, 오빠 등 가족이 캐디로 나선다. 미국 투어에서 딸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국내 재산을 모두 처분해 다걸기(올인)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씁쓸하게 귀국길에 오르는 사례도 허다하다.
미국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령인 정일미(35·기가골프)는 “미국 선수 중에는 비시즌에 보모나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투어 경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세율도 높아 연간 100만 달러를 벌 경우 30% 가까이 세금을 물어야 한다. 국내 세율은 선수 소득의 3.3%에 불과하다. JLPGA투어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으로 연간 경비는 1000만 엔(약 8200만 원) 정도 소요된다. 대회마다 이동 거리가 짧고 그 수단도 다양하다. 선수들은 대회가 끝나면 골프장에서 바로 다음 대회장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된 택배 서비스를 통해 캐디 백을 비롯한 장비를 보낸 뒤 신칸센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세금은 상금의 20% 수준.
전미정의 매니저인 변지혜 씨는 “일본에서 여자 골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상금과 대회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일본 투어가 장점이 많은 게 분명하지만 미국 투어에 비해 국내에서의 관심은 크게 떨어진다. 팬들이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거의 미국 쪽에 쏠려 있어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폰서 업체들도 일본보다는 미국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을 우선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일본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은 대개 후원 회사가 없는 실정. JLPGA투어와 미국LPGA투어에서 신인왕에 오른 한희원(휠라코리아)의 아버지 한영관 씨는 “미국이 명예라면 일본은 실속”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일본 여자프로골프투어 주요 선수 상금 랭킹 (16일 현재) | ||||||||
한국(KLPGA) | 미국(LPGA) | 일본(JLPGA) | ||||||
순위 | 선수 | 상금 | 순위 | 선수 | 상금 | 순위 | 선수 | 상금 |
1 | 신지애 | 6억1454만1667원 | 1 | 로레나 오초아 | 336만4994달러(약 30억 원) | 1 | 우에다 모모코 | 1억4341만2232엔(약 11억7000만 원) |
2 | 지은희 | 3억347만5197원 | 2 | 수잔 페테르센 | 178만8400달러(약 16억 원) | 2 | 요코미네 사쿠라 | 1억1136만4890엔(9억3000만 원) |
3 | 안선주 | 2억8158만6082원 | 3 | 폴라크리머 | 136만4298달러(약 12억 원) | 3 | 전미정 | 1억748만1679엔(약 8억8000만 원) |
4 | 최나연 | 2억2231만8337원 | 4 | 김미현 | 125만5348달러(약 11억 원) | 13 | 신현주 | 4314만4229엔(약 3억5000만 원) |
5 | 조영란 | 1억8524만5882원 | 5 | 이선화 | 108만6198 달러(약 9억9000만 원) | 23 | 송보배 | 3186만6273엔(약 2억6000만 원) |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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