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루키 중 단연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은 김광현은 전년도 입단해 MVP와 신인왕을 독식한 한화의 류현진과 비교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김광현에게 프로 무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정규시작 개막 후 근 1달 만인 5월 13일 KIA전에서 힘겹게 첫 승을 거둔 후 6월부터는 아예 2군행 짐을 싸는 수모를 당했다. 5억대 신인의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2군에서 와신상담한 김광현은 한 여름 다시 돌아와 한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힘을 빼라”는 김성근 감독의 주문을 철저히 이행한 김광현은 투구 시 중심이동이 좋아지면서 구속과 제구력도 덩달아 살아났다.
결국 김광현은 한국시리즈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시즌 전 SK구단이 배포한 팬북에 '가상 한국시리즈' 내용 그대로 4차전에서 인상적인 호투를 펼치며 팀을 구해낸 것이다. 김광현은 내친 김에 11월 열린 코나미컵에서는 일본 챔피언 주니치 드래곤즈 타선마저 농락하며 일약 미래 한국야구를 책임질 좌완투수로 급격히 부상하게 됐다.
시즌 막판 보여준 놀라운 활약 덕에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김광현을 인천 구월동에 있는 SK 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근황을 묻자 또래들처럼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천생 10대였다.
[이하 인터뷰 전문]
-시즌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각종 시상식에 여기 저기 행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여자친구 만날 시간도 없네요. 또 짬 내서 운전면허 학원도 다니려고요.
- 얼마 전에 연봉 100% 인상에 재계약을 하셨는데요. 만족하나요?
네 만족합니다. 구단에서 제 생각 많이 해주고 잘 대우해 준 것 같아요. 내년에는 여기에 보답하고 더 잘해서 연봉 많이 올려 받아야죠.
-한국시리즈 우승상금도 받으셨을 텐데요. 어디다 쓰셨어요?
부모님 다 드렸죠.
-SK에게 받은 계약금과 올해 연봉도 다 부모님에게 드렸나요?
계약금은 다 드렸고 연봉은 반만 드렸어요. 2,000만원이었으니까 제가 1,000만원 가졌고...그런데 사실 돈 쓸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올해 프로 데뷔전 첫 상대가 삼성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기분이 어땠나요?
떨렸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몸 푸는데 스파이크도 안 신고....정말 긴장 많이 했습니다.
-프로 데뷔전 때와 한국시리즈 등판 때 중 언제가 더 떨렸어요?
데뷔전 때가 훨씬 긴장했죠. 한국시리즈 때는 전혀 떨리지 않고 오히려 신나고 재밌었어요. 한국시리즈 같은 큰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는데 정말 야구 할 맛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칠 테면 쳐봐라 하는 식으로 자신 있게 경기에 임한 게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한국시리즈 4차전 때 SK 타선에서 의외의 선수들이 김광현 선수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기분은 좋았죠. 하지만 마운드에서는 무조건 상대 타자들에게만 집중했습니다. 우리 팀이 점수를 뽑건 말건 마운드에서는 항상 0-0이라고 생각하고 던졌죠. 무조건 점수는 안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요. 선배님들도 우리 팀이 점수를 내면 마운드에서 투수가 흥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팀 공격을 아예 보지 말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주자가 누상에 나가 있을 때 견제가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산 선수들이 매우 빠르고 누상에서 매우 적극적인데 부담이 크지 않았나요?
시즌 끝나고 한국시리즈 준비하면서 합숙을 했습니다. 그때 일주일간 견제 연습만 계속했어요. 코치님이 맨투맨으로 붙어서 가르쳐 주신 덕분에 조금 좋아졌죠. 그리고 두산의 고영민, 이종욱, 민병헌 등 발 빠른 선수들은 아예 내보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집중해서 공을 던졌습니다.
-지난 코나미컵 주니치전 선발로 나와 정말 잘 던졌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후 선수단 뒤풀이 때 김성근 감독님이 오더니 저에게 귓속말로 ‘코나미컵 주니치전 선발은 너다’라고 말해 주셨어요. 감독님께서 져도 본전이니까 한국시리즈 때처럼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 코나미컵 주니치 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주니치 선수들이 생각만큼 못치더라.”라는 말을 해서 일부에서는 ‘건방지다’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
건방진 것이 아니고요. 그날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실제로 제가 그날 볼이 썩 좋지 못했어요. 저는 단지 제 공이 나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잘못 전달된 거죠.
-기대와 달리 정규시즌 동안 부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상심이 크지 않았나요?
처음에 슬럼프에 빠지니까 ‘여기서 끝나는구나...이대로 야구 그만 두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주위에 선배님들께서 “너는 이제 19살이고 기회는 많다.”면서 힘을 주셨고 그러면서 마음 정리도 하고 또 마음이 편해지니까 다시 자신 있게 공을 던질 수 있게 됐습니다.
-2군에 다녀 온 뒤 구위가 많이 살아났습니다. 도대체 2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2군에 내려갈 때 감독님께서 지시한 부분은 딱 하나였어요. ‘힘 빼고 가볍게 던져라’ 이거죠. 정말 힘 빼고 던지니까 공도 빨라지더라고요. 또 2군에서 코치님과 선배님들에게 정신적인 부분도 많이 전수 받으면서 마음도 안정됐고요. 2군에서 몇 번 던져보니 점점 자신감도 생겼고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이대로 하면 시즌 끝날 때까지 2군이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자극했죠. 다행히 감독님이 기회를 주셔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투구 폼 교정은 계속 하실 생각인가요?
물론입니다. 나이 어릴 때 더 많이 고쳐나가야죠. 요즘 김성근 감독님이 지적해 주시는 부분은 노트에 다 받아 적어놨어요. 문제가 생기면 그 노트를 보면서 스스로 고쳐 나가고 있습니다.
- SK 팀 내에서 김광현 선수에게 특히 도움을 많이 준 선수가 있다면?
같은 좌완투수인 가득염 선배님이요. 저한테 변화구도 알려주시고 견제 동작 등도 보완해 주셨죠. 가득염 선배님은 선발, 중간, 마무리 다 해 보셔서 저한테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 SK에 ‘이 선수는 우리 팀이라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타자가 있나요?
이재원(포수) 선수가 특히 제 볼을 잘 쳐요. 한 번은 시뮬레이션 게임 때 이재원 선수에게 홈런 맞고 감독님한테 크게 혼난적도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가 누굽니까?
삼성의 박한이 선수요. 박한이 선수처럼 스피드 있는 왼손타자 들이 제 볼을 잘 치더라고요. 가령 이대형이나 이종욱 이런 선수들이죠. 보통 제가 좌완이기 때문에 우타자가 힘들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보통 빠른 왼손 선수들이 커트도 잘하고 삼진을 잘 안당해서 투수가 볼을 많이 던지게 해요. 초구에 안타 맞는 것보다 공 많이 던지고 볼넷 내주는 게 더 기분 나쁘죠.
- 내년 3월에 올림픽 예선전이 다시 열립니다. 대표팀에 합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게 점쳐지고 있는데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나요?
지금 벌써 대표팀 생각을 하는 것은 조금 이른 것 같고요. 이번에 뽑히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WBC도 있고 기회는 많으니까요. 지금은 내년 시즌 준비하면서 몸 잘 만들어 놓고 있다가 대표팀에서 불러준다면 그때 가서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세계에 제 이름을 알리고 싶습니다.
-지난 올림픽 아시아 예선 일본전에서 전병호(삼성)가 선발로 나왔습니다. 같은 좌완투수 전병호를 보면서 ‘내가 일본전에 던졌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은 없었나요?
물론 일본 선수들이 수준 높고 잘 치지만 일본 선수들도 사람인데 먼저 실수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 아닌 다른 어느 팀과의 경기에서도 실수만 안한다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김광현 선수가 거둔 정규시즌 3승과 코리언시리즈 1승이 모두 원정경기였습니다. 문학야구장과 궁합이 안 맞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문학에서 세계 대회가 열렸는데 그때는 잘 던졌어요. 그런데 올해 유독 문학에서 안 풀리고 승운도 안 따르더라고요. 저는 징크스를 믿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기회가 닿는다면 문학에서 더 많이 등판해 더 많이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던질 수 있는 구질은 몇 개나 됩니까? 새로운 구질을 계발할 생각은 없나요?
현재는 직구, 슬라이더, 커브, 싱커 등을 던져요. 보통 한 가지 구질을 늘리면 어느 한 가지는 위력이 줄어들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 가지를 버리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현재 싱커를 버리는 대신 체인지업을 중점적으로 배우고 있죠.
-체인지업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됐나요?
그동안 체인지업을 연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아직 컨트롤이 잡히지 않아서인지 타자들이 잘 맞추더라고요. 1월에 일본으로 전지훈련 떠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체인지업을 몸에 익힐 생각입니다. 만약에 완전치 못하면 싱커가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후년에라도 쓸 수 있도록 체인지업은 계속 연습할 생각입니다.
-체중이 안 늘어 고생한 것으로 아는데요.
SK에 입단하고 누가 ‘1키로 찌는데 천만원’이라는 생각으로 살을 찌우라는 말도 했었는데 보약도 먹어보고, 밥도 많이 먹었는데 쉽게 체중이 늘지 않더라고요. 또 시즌 초반에 마음고생이 심하니까 더 살이 안찌는 거예요. 그러다 2군 내려간 뒤에 훈련 끝나고 3~4시 쯤 숙소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많이 먹고, 자고 하니까 체중이 조금씩 늘더라고요. 역시 마음이 편하고 많이 먹어야 살도 찐다는 걸 알았습니다. 현재 몸무게가 83키로인데 5~6키로 정도 더 늘려야 합니다
-시즌 전 미디어데이 행사 때 류현진 선수와 장난스런 설전도 벌이곤 했는데요. 류현진 선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2군에 있었을 때나 한국시리즈 때 전화로 이야기 나눠본 적 있나요?
현진이 형은 표현을 잘 안 해요. 제가 2군에 있을 때도 전화하면 야구 이야기는 별로 안한 것 같고요. 한국시리즈 때나 코나미컵 때도 그냥 ‘잘했다’ 한 마디 정도 해주는 게 다였죠. 표현을 잘 안하니까요.
-류현진 선수를 마음속에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나요?
아직 라이벌은 아니고 제가 따라가는 입장이겠죠. 지금은 현진이 형을 따라간다는 생각이지만 결국 목표는 류현진 선수를 넘어서는 겁니다.
- 김광현 선수가 생각하는 프로와 아마의 차이점이 뭔가요?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죠. 아마 때 프로야구 보면서 ‘어떻게 저런 선수가 프로일까’하는 생각도 했는데 정말 몰랐던 거예요. 일단 프로선수들은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전력분석도 정말 세밀하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프로와 아마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본야구에 정통한 김성근 감독과 미국 생활을 오래한 이만수 코치의 차이점을 느꼈나요?
두 분이 서로 조화를 이뤄서 좋은 효과를 본 것 같아요. 김성근 감독님은 운동을 정말 많이 시키는 분인데 반해 이만수 코치님은 짧고 굵게 하시는 분이거든요. 선수들이 힘들어하면 이만수 코치님이 운동량을 적당히 줄여주시곤 하셨죠.
-나중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야구 하고 싶은 생각은 있겠죠?
국내 야구가 발전하려면 많은 선수들이 선진야구를 배워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물론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운동해서 모든 국내 타자들이 나에게 졌을 때, 그때 해외무대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아직은 꿈이죠.
-존경하는 메이저리거가 누군가요?
랜디 존슨이요. 처음에 랜디 존슨의 투구 폼을 보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느린 화면으로 보니까 힘 안 들어가고 몸에 무리 안 가는 좋은 투구 폼을 가진 것 같아요. 이에 비해 제 투구 폼은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거든요. 쉽게 던지는 폼은 아니죠.
-누나 팬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여자친구도 연상(1살)이라고 들었습니다. 잘 지내나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 얼굴이 알려져서 불편한 것도 있지만 아직 괜찮습니다. (김광현은 여자친구가 언론에 자세히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제가 힘들 때 도움을 주신 팬들이 기억에 남죠. 제가 2군에 있을 때 격려 해주신 분들도 고맙고요. 야구 안 될 때 제 팬 카페에 ‘죄송하다. 면목 없다.’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그때 “괜찮다. 앞으로 더 노력하면 된다” 이런 댓글 보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친이 LG의 열성 팬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광현 선수도 이상훈,이병규 등 LG출신 선수들을 좋아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올해 LG전에서 남다른 기분이 들었나요?
LG는 좋아했던 팀은 맞는데 제가 좋아했던 선수들은 지금 다 나갔잖아요. LG라고해서 특별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금 저는 SK 소속이니까...
-야구 말고 즐겨하는 스포츠가 있어요?
친구들하고 당구를 좀 치는데요. 학생시절 때 가끔 가곤 했는데 잘 치는 수준은 아니고요.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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