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헝그리 복서… 깨어나라, 우리 챔프

  • 입력 2007년 12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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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최요삼 사흘째 의식불명

대전료 털어 가족부양 ‘든든한 집안기둥’

무능한 협회 행정… 다쳐도 보상 못받아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털 타이틀 매치 조인식이 열린 2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힘겹게 50.8kg의 계체를 통과한 최요삼(35)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이 각고의 체중 감량을 하느라 며칠을 굶다시피 했기 때문에 탈이 날까 갑자기 음식을 속에 넣을 수가 없었다. 동생 최경호(33) 씨가 자장면을 먹는 동안 그는 팥을 넣어 만든 디저트만 두 개 먹었다.》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더듬었다. “아… 왜냐고요? 모를 겁니다. 너무나 배도 고프고 힘도 들고, 아… 정말 모를 거예요.”

그는 수개월간 수백 km의 로드워크를 실시했고 수백 번의 스파링을 했다. 35세의 나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력훈련은 혹독했다. 도전자의 경기 비디오를 70번 넘게 봤다. 왜 은퇴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힘들어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나라고 묻는 때가 많아요. 그러나 가야만 합니다”고 대답하곤 했다.

4남 2녀의 다섯째인 그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2002년 집안이 기울어 식구들이 집까지 잃었다. “이사 비용조차 없었습니다.” 당시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이었던 그는 3차 방어 대전료 등을 모두 털어 집을 마련해 가족을 구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생 경호 씨를 뉴질랜드로 골프 유학을 보내 매달 150만 원의 생활비를 대 주며 3년간 뒷바라지했다.

“내가 동생을 그렇게 키웠습니다.” 동생은 프로골퍼가 돼 귀국한 뒤 매니지먼트사를 차려 직접 형의 매니저가 됐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도 최요삼이 힘에 겨워 잠을 못 이룰 때마다 형제는 함께 밤을 새웠다. 그때마다 둘은 “멋있게 살자”고 다짐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링에 오르던 그는 “내년이면 동생이 결혼합니다. 세계챔피언이 꼭 돼서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고 했다.

최요삼은 2002년 4차 방어에 실패해 타이틀을 잃었다. 이후 두 차례 더 세계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한 차례 더 세계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것이 꿈이었으나 몇 년 동안이나 비인기 종목으로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다. 어렵게 스폰서를 구한 이번 경기를 앞두고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 힘들어도 ‘맞짱’을 뜨겠다”고 말했다. 25일 링 위에 오르기 직전 그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좋습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26일 현재 뇌수술을 받은 뒤 의식불명 상태다.

그의 가족은 치료비를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한국권투위원회에서 받아야 하는 수술비 등의 건강보호기금을 많이 타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래 선수들의 파이트머니에서 1%씩 떼어 1억여 원의 적립금이 있었지만 권투위원회가 내부 갈등으로 인한 소송과 기금 유용 등으로 얼마 전 거의 다 날렸기 때문이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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