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조웅래 ㈜선양 회장

  • 입력 2007년 12월 2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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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활에 찌든 이여… 계족산을 맨발로 달려라

《아프리카에서 매일 아침 영양은 잠에서 깬다.

영양은 빠른 사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도망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잘 안다.

아프리카에서 사자도 매일 아침 잠에서 깬다.

사자는 빠른 영양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자신이 굶어죽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사자든 영양이든 태양만 떠오르면 서로 더 빨리 달리려고 죽을힘을 다한다.

<닐 배스컴의 ‘퍼펙트 마일’ 중에서>》

원시시대 달리기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빠르고 힘센 자가 가장 많은 먹이를 얻었다. 달리기는 생존도구이자 확실한 경쟁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백 m를 몇 초에 달리는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냥감보다 빨리 달린 자가 이 세상 최고의 스프린터였다. 먹이를 놓친 자는 한 마리 굼벵이일 뿐이었다.

현대인에게 달리기는 이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달리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얼마에 달렸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마스터스들에겐 3시간 이내(서브 스리) 완주 여부가 최대 화두다. 엘리트 선수들에겐 세계최고기록(2시간 4분 26초) 돌파가 가장 중요하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벽을 넘으면 또 하나의 벽이 기다린다. 길이 끝나면 또 하나의 길이 이어진다. 그것은 어쩌면 신기루나 같다. 승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단 한 명뿐이다. 하지만 그 승자조차 세계 최고기록을 세우는 순간. 새로운 벽이 그 앞에 놓여 있다. 결국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 삼형제가 보스턴 완주한 마라톤 가족

조웅래(48) 씨는 죽기 살기로 달리지 않는다. 서브스리니 뭐니 그딴 거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신나고 즐겁게 달리는 것에만 몰두한다. 어떻게 하면 ‘강같이 평안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그는 2001년 마라톤에 입문했다. 풀코스 34회 완주에 개인 최고기록 3시간 23분. 이만하면 ‘강호의 고수’라 불릴 만하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그는 대전에 있는 소주회사 ㈜선양의 회장. 사업상 사람을 만날 때면 당연히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소주를 마신다. 어쩌다 약속이 없을 땐 직접 시음해 보느라 또 소주를 마신다. 결국 거의 매일 술독(?)에 빠져 사는 셈. 담배는 1년 반 전에 뚜∼욱 끊었다.

조 회장은 키 172cm에 몸무게 65kg의 탄탄한 체구. 뱃살은커녕 군살 하나 없다. 구릿빛 얼굴에 보기만 해도 활력이 철철 넘친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2시간 가까이 대전 계족산 10km를 달린 덕분. 봄 여름 가을엔 아예 맨발 차림이다. 맨발로 걷거나 달리면 저절로 발바닥 지압 효과가 일어난다. 발바닥이 곰발바닥처럼 말랑말랑해진다. 하체가 후끈후끈해지고 밤엔 꿀 같은 단잠을 잔다. 열흘에 한 번 발바닥 굳은살만 제거해 주면 끝이다.

조 회장은 2006년 9월 계족산 맨발마라톤대회를 처음 열어 계속 이어오고 있다. 올 11월엔 42.195km 코스에 황토 1000t을 뿌리고 계족산 피톤치드마라톤대회를 열어 화제가 됐다. 그 비용만 2억여 원. 지방의 작은 소주회사로서 적지 않은 돈이다.

“숲 속을 달리는 사람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깔깔거리며 걷는 아이들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조 회장 주변엔 늘 달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회사 직원 230명 중 10km 이상 뛴 사람이 90%가 넘고, 풀코스 완주자는 50여 명에 이를 정도. 요즘 신입사원은 아예 3개월 수습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에 10km를 완주해야 정식사원이 될 수 있다. 마라톤대회에 나가는 직원들에겐 수당이 지급된다. 매달 두 번씩 회사 임원회의도 계족산에서 연다.

2005년 봄엔 조 회장과 둘째형 경래(64), 셋째형 갑래(59) 씨 삼형제가 나란히 보스턴마라톤에서 달렸다. 올봄 서울국제마라톤에선 이들 40·50·60대 삼형제도 모자라 조회장 조카 2명, 처형, 조카사위 등 가족 7명이 참가해 부러움을 샀다. 조 회장 일가는 이 대회에서 354만6340원의 불우이웃돕기 후원금(참가자 110명)을 모아 기탁하기도 했다. “사윗감은 최소한 하프코스는 완주해야 한다”는 게 조 회장 형제들의 지론.

조 회장은 내심 ‘마라톤왕국 건설’을 꿈꾼다. 최근 해외마라톤대회 전문여행사인 ‘여행 춘추’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 나아가 아프리카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에서 내년 2월 마라톤대회를 열기로 하고 국내 참가자 모집(seymarathon.com 02-6399-6927)에 나섰다. 세이셸은 유럽인에게 고급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내년 2월엔 도쿄마라톤대회에 부스를 확보해 일본인에게 계족산맨발대회 홍보에 나설 계획. 동영상 제작도 이미 끝냈다. 사람들은 그를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라고 말한다. 돈도 안 생기는 곳에 너무 헛힘을 쓴다는 것. 그는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며 빙그레 웃을 뿐이다. 세이셸공화국과는 그곳 외무장관이 올해 직접 계족산 맨발걷기대회에 참가했을 정도로 친밀하다.

○ 계족산은 조회장의 ‘달리기 줄기세포’가 형성된 곳

조 회장은 숲을 좋아한다. 산골(경남 함안)에서 자란 탓인지 복잡한 것은 딱 질색. 운전도 하지 못한다. 승용차는 있지만 운전은 부인 몫이다. 보통 서울 갈 땐 KTX를 이용하고 시내에선 지하철이나 택시, 버스를 탄다. 골프채도 잡아 본 적이 없다. 계족산 숲 속을 달리면 그 자체가 삼림욕인데 굳이 골프장에 갈 이유가 없다.

계족산은 그의 집(대전 둔산동) 부근에 있다. 대전 산꾼들은 보만식계(보문산 457.3m∼만인산 537.1m∼식장산 597.5m∼계족산 423m) 능선을 즐겨 탄다. 계족산은 그 능선 끝에 있다. 산줄기는 대전 남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져 북동쪽에서 끝난다. 길이는 약 50km. 해발 600m 이하의 낮은 산들로 이어져 아기자기하다. 천천히 걸어도 20시간 정도면 충분.

계족산은 조 회장의 ‘달리기 줄기세포’가 형성된 곳이다. 그의 ‘마라톤 유전자(DNA)’가 싹튼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구나”라고 느꼈다. 숲 속 달리기를 통해 ‘에코힐링(Eco-Healing)’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말한다. “도시 생활에 찌들고 멍든 사람들은 모두 계족산으로 오라! 숲 속을 달려 보라! 영혼이 박하처럼 환해질 것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조웅래 회장은?▼

조 회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근무한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 1992년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단돈 2000만 원으로 벤처회사 ‘5425’를 만들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후반 휴대전화 벨소리(컬러링) 시장을 평정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4년엔 그동안 번 돈으로 대전 충청지역 소주회사 선양을 인수한 뒤 9개월 만에 ‘맑은 린’을 내놓아 히트했다. 최근엔 고급 소주인 ‘보리소주 맥’을 내놓고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846억 원. 올핸 950억 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조 회장은 외환위기로 어려웠던 1999년 고향인 경남 함안에 10억 원을 출연해 ‘조웅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2007년까지 총 407명(초등 177명, 중등 76명, 고등 55명, 대학 99명)에게 지급한 장학금은 2억9470만 원. 조 회장은 “적은 액수지만 뭔가 이 사회를 위해 자그마한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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