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남한산성 트레킹

  • 입력 2008년 1월 1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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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하는 말)’에서》

아이 손잡고 산성 한바퀴

겨울까치도 반겨주네

○본성 한 바퀴 도는 데 3시간이면 충분

인조는 1636년 음력 12월 14일 서울도성을 버렸다. 그는 한밤 송파나루에서 강을 건너 새벽에 남한산성 남문으로 들어갔다. 세자와 신하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는 그곳에서 딱 45일간 머물며 스스로 ‘독 안의 쥐’가 되었다. 청나라 20만 군대는 조선 임금의 숨통을 쥐고 ‘그가 스스로 지치기’를 기다렸다. 이듬해 1월 22일 강화성이 함락됐다.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곳으로 피했던 빈궁들과 왕자들도 예외가 없었다. 1월 30일 인조는 송파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강을 건너 한양도성의 창경궁으로 돌아갔다.

한양도성은 남대문-돈의문-숙정문-혜화문-동대문-광희문으로 둘러싸였다. 길이는 약 18.2km. 남한산성은 한양도성의 닮은꼴이다. 동서남북 사대문으로 이뤄진 본성은 7km 남짓(외성·옹성 포함 11.76km)으로 수원화성(5.7km)보다 약간 길다. 본성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3시간이면 충분하다. 외성인 봉암성과 그 오른쪽으로 이어진 성곽까지 돌아도 5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남문→0.6km→남장대터→1.1km→동문→1.1km→동장대터→1.6km→북문→1.1km→서문→0.6km→수어장대→1km→남문’

○비상출입용 암문만 16개

남한산성 정문은 남문(지화문·至和門)이다. 인조도 그 문으로 들어갔다가, 나중엔 송파와 가까운 서문(우익문·右翼門)으로 나갔다. 북문은 전승문(全勝門). 아이로니컬하게도 김류의 정예병 300명이 그 문을 열고 나가 싸우다 전멸했다. 동문은 좌익문(左翼門)이다. 만약 북한산성이었다면 임금은 경복궁에서 지름길인 대성문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대성문은 다른 사대문보다 크고 화려하다. 북한산성은 정묘 병자 두 호란 직후인 숙종 37년(1711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해 그해 10월에 완공했다. 인조는 북한산성으로 가고 싶어도 산성이 없어 갈 수 없었다.

남한산성 비상 출입문인 암문(暗門)은 16개가 있다. 북한산성은 가사당, 부왕동, 청수동암문 등 7개. 큰 문은 누각이 있고 출입구도 아치형이지만, 암문은 누각이 없고 모양도 사각형이다. 글자 그대로 ‘그늘 문’이다. 병사와 백성들은 청병의 경계가 느슨해지면 이 암문으로 드나들었다.

남한산성 성곽 길은 험한 바윗길이나 가파른 곳이 거의 없다. 부모들이 아이들 손잡고 트레킹하기 딱 좋다. 역사공부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수어장대 부근, 서문∼북장대터 길과 북문∼암문 길 옆엔 소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울퉁불퉁한 껍질이 용 비늘 같다. 맑은 솔바람 소리가 세상 때에 찌든 영혼을 씻겨준다.

한양도성 바로 뒤에 있는 북한산성 둘레는 총 12.7km. 곳곳에 바윗길이 많아 산행시간만 8시간 안팎이 걸린다. 성 넓이도 6.6km²(약 200만 평)로 여의도(89만 평)의 2.25배나 된다. 한양도성 7.66km²(약 232만 평)에 비해서도 결코 좁지 않다.

남한산성은 비좁다. 본성 안쪽 면적이 2.32km²(약 70여만 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양도성과 마찬가지로 구색은 다 갖추었다. 임금의 숙소인 98.5칸짜리 행궁(북한산성행궁 120칸)과 지휘본부 장대(將臺), 종묘, 사직, 관아, 감옥, 객사, 종각 등 없는 게 없었다. 군사들 숙소인 군포 125개, 절 9개(북한산성 12개), 우물 80개(북한산성 99개), 연못 45개(북한산성 26개)가 있었다. 심지어 비상시에 땔감으로 쓸 숯과 소금도 가마니에 담아 곳곳에 묻어두었다. 남한산성 내엔 벼농사 지을 논도 제법 있었다.

○370여 년 전 역사의 숨결 들리는 듯

병자년(1636) 남한산성 겨울은 추웠다. 새들도 날지 않고 종일 칼바람이 울었다. 성곽을 지키는 군졸 중에선 얼어 죽는 자가 잇따랐다. 일부 장졸은 행궁 밖에 모여 ‘끝까지 싸우자고 말하는 신하를 모두 청나라 진영에 보내버리라’고 울부짖었다.

무자년(2008) 남한산성 겨울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휴일엔 수천여 명이 하얀 회칠을 한 성곽을 따라 걷는다. 누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꿈틀거리는 것 같다. 서문 밖으로 보이는 삼전도 들판은 아파트 숲으로 울창하다. 까막까치들이 늙은 소나무 사이를 총총 넘나들며 부리로 쪼아댄다. 노루꼬리 같이 매달린 신갈나무 마른 잎이 바람에 부르르 떤다.

그렇다. 병자년 그때 남한산성 안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싸우다 죽은 자나, 투항해서 살아남은 자나 모두 땅 밑에 묻혔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다시 남한산성을 찾는다. 후예들은 모두 싸우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이었다. 무릎 꿇어 살아남은 자들의 몸을 받았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이제 지구상에 흔적도 없다. 그들에게 끌려간 60만 조선 백성도 자취가 사라졌다.

살아남아서 강한 것인가, 아니면 강해서 살아남은 것인가. 역사는 말이 없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교통편

(남한산성 관리사무소 031-743-6610 www.namhansansung.or.kr)

▽동문 진입로

① 천호대교→길동→황산 삼거리→하남시→광지원→동문→산성종로 ② 중부고속도로 광주 나들목→광지원→동문→산성종로

▽남문 진입로

① 잠실→복정 사거리→약진로→산성터널→산성종로

②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헌인능 앞→세곡동→대왕교→약진로→산성터널→산성종로 ③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양재대로→수서 나들목→동부간선도로→세곡동→대왕교→약진로→산성터널→산성종로 ④ 암사(지하철 8호선)→잠실→송파→복정 사거리→산성역→산성터널→산성종로

▽버스

① 15-1번(경기고속): 산성종로↔광지원 ② 9번(경기고속): 산성종로∼남문∼남한산성 유원지∼성호시장∼모란

▽지하철

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 9번 버스 탑승 ②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로 나와(200m정도 걸어 올라감) 상원초등학교 앞에서 9번 버스 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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