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태릉선수촌 실내 빙상장에는 매서운 고함소리가 들렸다.
“막아. 앞을 보면서 수비를 해야지.”
10여 명의 선수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무거운 보호 장비를 입고 얼음판을 지치고 있었다. 잠시 쉬고 있는 선수의 헬멧 뒤로 긴 머리채를 보고서야 여자 선수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4월 헝가리에서 열리는 2008 세계여자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 디비전3에 출전하기 위해 7일부터 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은 광운중 아이스하키팀과 연습경기가 있었다. 1시간 넘게 열심히 뛰었지만 여자대표팀은 2-7로 졌다. 경기가 끝난 뒤 김익희 대표팀 감독은 “지금까지 이겨 본 적은 없어요. 실전감각을 키우는 것에 만족해야죠”라며 빙긋이 웃었다.
9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현재 걸음마 단계. 지난해 중국 창춘 동계아시아경기에서 중국에 0-20, 북한에 0-5로 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도 막내다.
여자아이스하키팀이 약한 이유는 얇은 선수층 때문. 국내에서 활동하는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는 80여 명에 불과해 1000명이 훨씬 넘는 선수를 가진 외국 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재 대표팀 선수는 20명. 이들은 13세부터 32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대부분이 학생이고 직장인도 있다. 현재는 방학이라 대부분이 합숙훈련을 하고 있지만 개학을 하는 3월에는 선수에 따라 낮에 출근 또는 등교를 했다가 밤에 훈련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들의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뜨겁다.
막내 한도희(13·신도봉중)는 “언니들 따라서 운동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꼭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팀의 자랑을 늘어놓기 바빴다.
최고참인 이윤영(32·고려대 박사과정)은 “강의도 나가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하나도 못했다. 하지만 훈련은 절대 빠지고 싶지 않다”고 열의를 드러냈다.
이들의 4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목표는 우승이 아니다. “한국에도 이제 막 시작된 여자아이스하키팀이 있다고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건혁(24·서울대 중어중문학 3년) 송인근(25·서울대 정치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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