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이상 금융인으로 살았기 때문일까. 돋보기를 걸치고 서류를 넘기는 모습엔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191cm의 큰 키에 너그러운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과는 달리 일처리를 할 땐 깐깐함이 풍겼다.
1970년대 어린이들 사이에 “떴다. 떴다. 김재한. 날아라. 헤딩 슛∼”이라는 노래로도 명성을 떨쳤던 ‘장다리’ 김재한(61) 대한축구협회 실무 부회장. 선수 생활을 마치고 16년간 금융인으로 지내다 지난해 1월 30일 축구행정을 시작해 근 1년이 된 그를 ‘축구인의 날’ 행사가 있던 17일에 만났다.
○ 이젠 다시 축구인
“처음엔 적응하느라 진땀 뺐습니다. 축구가 많이 변한 게 큰 이유죠. 은행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그냥 굴러가는데 축구는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일이 추진돼 변수가 많습니다.”
축구할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났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한 적이 많았고 초반에는 각종 대표팀 관련 일이 쏟아질 때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허둥댔다. 특히 지난해엔 대표팀 음주 파문에 여론이 들끓었고 외국인 감독을 뽑지 못해 국내파 허정무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올리는 등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김)진국이와 (김)호곤이가 없었으면 적응 못하고 도망칠 뻔했어요.”
대표팀 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진국(57) 기획실장과 김호곤(57) 전무이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솔직히 협회에 처음 와서는 선수로 그라운드에서 뛸 때 플레이가 안 풀려 혼나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최소한 당황하는 일은 없지요.”
○투지는 우리 때가 좋았지
1970년대 김 부회장을 포함해 김호 김정남 이회택 박이천 김진국 차범근이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 뜨면 2만5000여 관람석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5만∼6만 명이 모이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열기는 더 뜨거웠다. 차범근-김진국-김재한으로 이어지는 플레이와 김재한-박이천 콤비 플레이는 장안의 화제였다.
“요즘 선수들은 실력에 비해 부와 명예가 넘칩니다. 그런데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몰라 망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인생을 고민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할 인성이 뒷받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 부회장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공부하는 유소년 시스템’. 초중고 및 대학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공부하는 리그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다.
○축구인은 하나다
“축구인이 단합해야 합니다. 축구에 대한 비판은 좋지만 특정 목표를 위해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행동입니다.”
1993년 협회를 맡아 16년간 협회를 이끈 정몽준 회장의 임기가 올해로 끝나는 것에 대해 김 부회장은 “정 회장은 축구인의 큰 자산입니다. 임기를 마친 뒤에도 축구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축구인들이 화합하고 명예롭게 퇴장할 수 있게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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