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休&宿<13>日 니가타현 유자와마치

  • 입력 2008년 1월 25일 03시 00분


온몸의 세포마저 흥분시키는 雪國의 스키

《서울에서 정동진을 지나 곧장 동해를 건너면 닿는 곳. 일본 혼슈의 니가타 현이다. 안타깝게도 니가타는 우리 기억에 부정적으로 남아 있다. 원산항을 오가던 북송선 만경봉호 출항지로, 최근 연이은 지진의 발원지 등으로. 그러면 일본인에게는 어떨까.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1968년)의 영예를 선사한 소설 ‘설국’이 쓰인 ‘노벨상의 고장’으로 꼽힌다. 또 최고의 쌀 ‘고시히카리’와 명주 ‘고시노 간바이’를 비롯한 600여 종의 니혼슈(일본주)가 생산되는 ‘맛의 고장’이기도 하다. 1911년 오스트리아제국의 육군소령 데오도르 폰 레르히에서 시작된 일본 스키의 발상지이자 나에바, 갈라유자와 등의 스키리조트가 포진한 ‘눈과 스키의 고장’으로 각광받는 ‘여행 1번지’다. 그 니가타 현에서도 설국의 무대인 다카한 료칸과 니가타 최고의 스키장인 나에바가 있는 유자와마치로 ‘설국여행’을 떠난다.》

○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 만나는 소설 ‘설국’의 고향 유자와마치

유자와마치는 도쿄 도민에게도 가깝지만 우리에게도 가깝다. 도쿄와 니가타를 잇는 조에쓰신칸센 덕분이다. 도쿄 역에서 유자와마치(에치고유자와 역)까지 75분. 오벤토(도시락)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창 밖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금방 에치고유자와 역에 닿는다.

열차가 떠난 뒤 텅 빈 철로와 플랫폼. 떠난 방향을 바라다보면 왼쪽에 언덕이 보인다. 설국을 집필했고 소설의 무대가 된 료칸 다카한(高畔)이 자리 잡은 곳이다. 당시엔 목조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2층 전시관(소설과 영화 관련 자료) 옆에 보존해 둔 객실(작가의 집필실)과 하염없이 내리는 이곳의 눈뿐. 의미 있는 곳이지만 소설을 읽은 적 없는 이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이곳을 찾을 요량이라면 소설부터 읽을 일이다.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느낀다는 여행 격언을 믿는다면.


▲ 영상취재 : 조성하 기자

○ 헬기를 타지 않고도 헬리스키의 딥스노 스키잉을 즐기는 설국 스키잉

나는 스키 마니아다.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면 눈만 보면 가슴이 설레는 설광(雪狂)이라 해야겠다. 그래서 내 여행역정에서 눈은 언제나 최우선이다. 12년간 130여 개 스키장을 섭렵한 것이 그런 ‘선천성 눈 밝힘증’의 증후를 예시한다. 그런 내게도 나에바 스키장은 초행이다. 단일 규모로 일본 최대의 스키장임에도 말이다. 시가고겐(나가노 현)이 더 크기는 해도 21개 스키장을 합친 것임을 감안하면 역시 나에바가 최대다. 그 나에바도 그런 합종연횡의 세기적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Mt.나에바’(마운트 나에바)라는 메트로 스키장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을 말한다. Mt.나에바는 가그라, 다시로, 미쓰마타 등 세 스키장을 포함한 네 개의 스키장 연합체다.

얼마나 클까. 나는 눈 내리는 아침, 유자와마치 관광교류반장인 세기 아키미쓰 씨를 따라 Mt.나에바 스키투어에 나섰다. 이곳은 크게 나에바와 가그라로 나뉜다. 다시로와 미쓰마타는 가그라 지역에 속한다. 그 나에바와 가그라가 무려 5.5km나 되는 긴 곤돌라로 연결됐다. 세계 최장의 곤돌라라는 설명이다. 유자와마치의 지형은 강원도 평창과 같다. 산속에 길게 뻗은 계곡이다. 그러니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산악뿐이다. 곤돌라 주변의 풍경 역시 같다. 설산연봉의 파노라마가 눈을 가리는데 가을에는 단풍 산악으로 바뀌니 단풍놀이 할 때 큰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지사다.

15분 후. 다시로 스키장의 해발 1346m 지점에 내렸다. 가그라 정상(해발 1845m)행 리프트까지는 산을 네 개나 넘어야 하는 먼 길이다. 밤새워 내리는 눈으로 시야가 가려 산의 규모는 가늠할 수 없었다. 드디어 다운 힐. 20cm 이상 쌓인 신설로 스키장은 전체가 파우더스노로 덮였다. 부츠가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눈에서는 회전 때마다 플레이트로 흩날린 눈이 얼굴까지 덮친다. 이런 딥스노(deep snow) 스키잉은 매 시즌 서너 차례 일본을 찾는 내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심설스키는 온몸 세포를 아드레날린의 포로로 만들고야 말았다. 그렇다. 설국에서 스키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세기 씨의 권유가 잇따랐다. 시즌 내내 이런 딥스노를 즐기고 싶다면 유자와마치로 오라고.


▲ 영상취재 : 조성하 기자


▲ 영상취재 : 조성하 기자

가그라 스키장은 미쓰마타 스키장과 연결됐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미쓰마타의 베이스(823m)다. 주차장까지는 케이블카가 운행 중이었다. 여기서 나에바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Mt.나에바의 양끝을 연결하는 이 버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40분’이라는 운행시간만으로도 감지된다. 큰 고개 넘어 네 스키장을 연결하는 국도 17호선이 여기서만큼은 스키장 구내도로로 전락할 정도다.

유자와마치는 나에바와 미쓰마타 중간의 에치고 지역 중심 타운이다. 이 유자와에 ‘갈라(GALA)유자와’라는 신칸센 역이 하나 더 있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스키하우스 겸용 고속철도역인데 도쿄까지 오가는 스키 전용 신칸센열차의 종착역이다. 역사 자체가 스키하우스라면 이해가 가실지. 역과 신칸센철도가 모두 스키장 전용으로 개발됐다.

산중턱의 스키베이스는 스키하우스와 연결되고 신칸센 역은 그 건물 1층을 차지하는 셈인데 스키장과 플랫폼은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다.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차림으로 직장을 마치고 온 도쿄 여성이나 넥타이 차림의 샐러리맨이 가방을 든 채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여기서는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레일&스키’ 시스템 덕분이다.


▲ 영상취재 : 조성하 기자

○ 혼진과 료칸, 호텔의 환대 속에 즐기는 겨울여행지

겨울 유자와마치 여행이라면 그 테마는 스키와 온천이 아닐까.

나에바의 프린스호텔은 스키어 숙소로 기막힌 곳이다. 스키인 스키아웃 형(스키베이스에 위치해 현관에서 스키를 신고 벗는 숙소)에다 기막힌 경관 덕분이다. 객실 통유리창으로는 슬로프 설경이 대형 TV 영상처럼 펼쳐졌다. 여섯 동의 건물이 베이스를 감싸 안듯 앉았는데 총객실은 1299실. 바이킹(뷔페의 일본식 표현)을 비롯해 20개의 다양한 레스토랑이 있는데 역시 통유리창으로 슬로프가 조망된다. 로텐부로(노천탕) 온천과 대중탕은 유료(500엔)다.

편의성만 유보하면 나에바 입구마을(버스로 5분 거리)의 료칸 ‘혼진(本陣)’도 좋다. 혼진이란 도쿠가와 막부가 각 지방 영주를 견제하기 위해 교대로 에도에 행차시켜 일정 기간 머물도록 했던 산킨코다이(參勤交代)제도의 유물. 성을 떠난 영주가 도중에 유숙하던 관급숙소의 통칭이 혼진인데 이곳은 에도로 이어진 삼국가도(현 국도 17호선)의 길목에서 1610년 이후 18대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료칸으로 바뀐 이곳은 최근 리노베이션으로 깔끔하게 단장됐다. 일본 전통 료칸의 DNA라 할 수 있는 혼진에서 묵는다는 특별한 체험 외에 멋진 설경의 로텐부로와 고기를 마음껏 구워 먹는 바이킹, 저렴한 숙식비(1박 2식에 1인당 1만 엔)도 매력이다.

유자와마치의 중심인 에치고유자와 신칸센 역 앞의 료칸 이나모토(46실)에도 묵었다. 72년 역사의 유서 깊은 료칸이 지난해 리노베이션을 거치면서 와모던(和modern·료칸과 호텔의 좋은 점을 두루 갖춘 스타일)으로 개선됐다. 객실 전체는 다다미 바닥이지만 침실만큼은 침대를 둔 형태를 말한다. 로텐부로와 대욕장, 가시키리(전세 내는 로텐부로)를 두루 갖췄고 저녁에 내는 정식인 가이세키 요리도 훌륭했다.

유자와마치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무이카마치 온천에는 전통미가 물씬 넘치는 료칸 류곤(본보 2007년 6월 1일자 보도)이 있다. 210년 된 부농의 집을 옮겨 지은 전통건축과 최고급 고시히카리 쌀로 지은 밥이 특징이다. 삼나무 숲가의 로텐부로도 기막히다.


▲ 영상취재 : 조성하 기자

니가타 현 유자와마치=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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