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스키, 정상 보며 한발 한발 세상 보며 쾌속 하강

  • 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7분


“내려만 가는 반쪽 스키는 가라.” 리프트 도움 없이 스스로 눈 쌓인 산을 오른 뒤 다져진 눈이 아닌 천연 설을 질주하는 산악스키는 새로운 등반의 세계다. 아래 사진은 정상을 향해 걷고 있는 산악 스키어들. 사진 제공 대한산악연맹
“내려만 가는 반쪽 스키는 가라.” 리프트 도움 없이 스스로 눈 쌓인 산을 오른 뒤 다져진 눈이 아닌 천연 설을 질주하는 산악스키는 새로운 등반의 세계다. 아래 사진은 정상을 향해 걷고 있는 산악 스키어들. 사진 제공 대한산악연맹
등반의 희열 식기도 전 질주의 환희

유럽-日선 무동력 스포츠 각광

대관령-용평 등서 즐길수 있어

지난 몇 년 동안 대학 산악부 활동을 하며 산에 빠져 살았지만 스키는 몰랐던 윤해원(23·용인대 산악부 3년) 씨. 요즘 그는 산악스키에 푹 빠졌다.

윤 씨는 21일부터 8일간 일본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합동 산악스키 등반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처음 산악스키를 접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젊은 산악인들이 공동 프로그램을 매년 열기로 했고 이번 합동 산악스키 등반이 그 첫 행사다.

한국산악회는 합동 스키 등반에 참가할 대학생 대원 9명을 대상으로 최근 용평리조트에서 두 차례의 산악스키 강습회를 가졌다. 윤 씨는 양발에 온통 물집이 잡힐 정도로 고생했지만 “스키로 눈 쌓인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스키 등반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등반의 세계”라고 말했다.

윤 씨는 내친김에 16일부터 강원 용평리조트에서 열리는 제1회 아시안컵 및 제5회 강원도지사배 전국 산악스키대회에도 참가하기로 했다.

여기서 질문. 왜 3개국 산악회가 마련한 첫 프로그램이 하필 산악스키일까. 대한산악연맹 스키등반위원회 유한규(53) 위원장의 말에 해답이 있다. 그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산악스키야말로 ‘알피니즘(험난한 산에 도전하며 등산의 순수한 기쁨을 추구한다는 산악인들의 등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등반 형태”라고 말했다.

산악스키의 역사는 오래됐다.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현대 등반의 역사는 처음부터 스키와 함께였다.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등산학교 이름이 국립스키등산학교(ENSA)인 것이 이를 시사한다.

내려가는 것만 하는 ‘반쪽 스키’인 알파인 스키가 현재 스키의 간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산악스키도 한때 올림픽 종목이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1회 동계올림픽대회부터 3회 대회까지 올림픽 종목이었던 것. 4회 대회부터 올림픽에서 빠진 것은 산악인들이 ‘등반은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알피니즘을 모독하지 말라’고 반발했기 때문.

아이로니컬하게도 올림픽 종목에서 빠진 산악스키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반면 ‘반쪽 스키’인 알파인 스키는 대중적인 스포츠가 됐다.

에베레스트 같은 8000m급 고산 등반에도 스키와 접목이 시도되고 있지만 일반인 사이에서도 산악스키가 최근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무동력 스포츠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국제산악연맹(UIAA) 주관으로 2002년부터 국제산악스키대회(ISMC)도 열리고 있다. UIAA는 산악스키를 다시 올림픽 종목으로 편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악스키 장비=산악스키는 산을 오르기 위해 부츠의 뒤축이 스키 플레이트에서 떨어진다. 미끄러지지 않게 바닥의 한쪽 면에는 특수 천 소재를 입힌 ‘실’이라는 테이프를 부착한다. 내려올 때는 뒤축을 고정하고 테이프를 뗀다. 가격은 스키만 보통 80만 원 선, 경기용은 120만 원 정도이다.

국내에서 산악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용평리조트 부근의 발왕산, 대관령 삼양목장 일대 황병산, 횡성의 청태산 정도. 3000m급 산이 많은 일본은 상대적으로 환경이 좋다. 대한산악연맹은 매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산악스키 강습회를 열고 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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