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박스]“토스트 먹으며 감기몸살 앓을땐 눈물이 쏙”

  • 입력 2008년 3월 29일 11시 40분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부터 매년 가능성 있는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유럽으로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연수를 경험한 선수는 모두 23명. 지난해 여름 잉글랜드 레딩FC와 왓포드FC 2개 구단에 각각 3명씩이 유학, 선진 축구를 배우고 있다. 이들 유소년 유망주들이 스포츠동아 창간에 맞춰 영국생활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꿈과 도전 정신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이번 편지에는 김원식(동북고) 남태희(현대고) 지동원(광양제철고·이상 레딩FC) 민상기(태성고) 이용재(포철공고) 백성동(금호고·이상 왓포드FC) 등 6명의 선수와 김인수 코치 등 7명이 참여했다.

○ 내 꿈은 빅리거…연습 또 연습

(설)기현이 형이 레딩에 있을 때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고 조언해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여기에 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라. 자신의 꿈에 도전하라”고 격려해줬다.

잉글랜드에서는 한국과 달리 훈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럴 때면 개인훈련을 한다. 감독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개인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량이 적은 날이면 스피드 훈련 등을 했다. 남과 똑같이 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노력하는 그런 선수가 되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레딩 선수들의 훈련을 처음 봤을 때는 한국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이점은 ‘열정’ 이었다.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개인 훈련을 충실히 하고, 남보다 더하려고 하는 열정 말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진다. 그래서 난 경기를 볼 때 선수들의 장점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앞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해나갈 것이다.

○ 너무 다른 음식·언어·문화…삼중고에 눈물만

문화, 언어, 음식 때문에 향수병에 걸린 적도 있다.

첫째, 가족은 항상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한번은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는데 병원도 못 가고 먹는 것 조차 여의치 않아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힐 때가 있었다. 물론 같이 온 친구들이 위로해주고 챙겨줬지만 가족 만큼 하겠는가.

둘째는 친구다. 주말이면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고 싶을 때인 내가 이렇게 친구들과 떨어져 먼 나라에 있으니 정말 친구들이 그립기만 하다.¶ 셋째는 음식이다. 한국과 영국의 음식은 너무 다르다. 한국은 밥, 반찬, 국 이게 기본적인 식사다. 하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다. 아침이야 토스트 시리얼 정도로 해결하고, 점심에는 훈련장에서 먹어 배고픔이 덜 한다고 하지만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한참 먹을 시기인 우리에겐 저녁은 턱 없이 부족한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집이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집에는 혼자이거나 낯선 가족 뿐이다. 물론 이젠 많이 편해지만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생각하는 선수라면 이런 점은 염두에 둬야할 듯 하다.

○ 영어 못해 매일 똑같은 햄버거만 먹었죠

영국에 와서 식당과 패스트푸드 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당황하고 힘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햄버거를 시키는데 서로 가기 싫어 눈치만 보고 있고, 어떻게 시켜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자신이 없어 똑같은 것을 매일 시켜 먹은 적도 많았다.

발음에 대해서도 우리는 많이 부정확하다 보니까 상대방이 못 알아들어 되물어 볼 때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쳤을 때 “I'm sorry” 해야 하는데 갑자기 입에서 “Thank you” 라는 말이 나와 황당했던 일들, 훈련 마치고 내일보자며 코치가 “See you tomorrow” 했는데 ‘tomorrow’가 무슨 말이냐고 물어본 일들, 지금이야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매주 영어 학원을 다닌다.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매시간 즐겁다. 아직 부족한 영어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 나와서는 외국말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으로 남은 유학생활 동안 축구 뿐 아니라 영어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 약점 없는 EPL선수들 ‘햐∼ 못하는게 없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갖춰야 해외로 진출해 성공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개인기술, 둘째는 스피드, 셋째는 전술이해능력, 넷째는 상황대처능력이다. 웨인 루니, 호나우두, 토레스, 드록바 같은 선수들을 보면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을 정도이고, 프리미어리거 대부분의 기량은 출중하다. 볼 소유 능력과 개인 기술로 상대 선수 한두 명을 제치는 것은 기본이고, 스피드가 있는 상황에서도 크로스는 자로 잰 듯 정확하며, 어느 각도에서도 예기치 못한 태클이 들어오고, 어느 위치에서 뛰어도 전술적으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황대처능력이 탁월하며, 빠른 공수 전환에 시종일관 뛰어다니는 체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단지 한두 가지 기술로 빅리그에 뛰어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님 왜 그렇게 해야하죠? 이건 안되나요?

영국의 훈련 방식 중 독특한 것은 선수들과 지도자 사이가 정말 매끄럽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어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수들은 지도자에게 작은 부분까지 물어봐가면서 자신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한다. 또 지도자들은 매 훈련 선수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훈련 스케줄을 짠다. 또한, 이것이 어떤 상황에서 중요하고 어떻게 써야하는지 정확하게 설명을 한 뒤에 훈련을 시켜 훈련의 성과를 높인다. 또 지도자들이 절대 강압적으로 훈련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의 창의력이 풍부해지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구사한다.

선수가 실수를 범했을 때 실수를 먼저 지적하기보다는 조금 전에 어떤 플레이를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먼저 한다. 그럴 경우 선수는 자기 주장을 분명하게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 한국의 훈련 방식을 낮게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 비 와도 경기장은 ‘꽉’…암표 없어서 못 팔아∼

유학생 한명이 토트넘 기념품을 사서 집으로 갔는데, 집주인이 고함을 치며 손에 든 물건을 빨리 밖으로 버리라는 것이다. 주인은 레딩 서포터스라서 다른 팀 물건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아무리 레딩팀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물건이 아닌가. 주민들의 지역연고팀에 대한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엿볼 수 있었다.

비오는 날 K리그 경기장은 거의 텅텅 비지만, 영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비 오는 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 놀랐다. 스탠드가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경기장 밖에는 아직도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암표라도 구하기 위해 암표상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한국과 달리 영국은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모든 클럽들이 회원제나 예약제로 운영된다. 경기장에 와서 티켓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즌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클럽에 돈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을 해야 하는데 가입한다고 해도 바로 티켓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명문 구단들은 빠르면 2∼3년 정도 기다려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4∼5년도 걸린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시즌티켓을 가질 수만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이라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윤태석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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