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에서 터지는 함성의 톤과 타이밍, 밤하늘에 나부끼는 깃발의 형태와 크기, 그리고 곳곳에 나붙은 플래카드에 적힌 구호와 문양 등에 그 나라만의 특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경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에서는 각 나라 특유의 문화적 차이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만큼 축구 경기장의 풍경은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물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그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축구장 마다 똑같은 풍경도 있다. 바로 원정팀에게 쏟아지는 야유마다 빠짐없이 그 나라에서 가장 심한 욕설이 포함된다는 점과 심판 역시 원정팀 선수와 함께 고스란히 그 욕설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은 자칭 ‘꿈의 무대(Theater of Dream)’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나 브라질 2부리그 상투안드레의 허름한 홈구장인 상투안드레 시립운동장이나 똑같다.
2006년 아스널과의 일전을 관전하려 올드 트래포드를 찾았을 때, 단정하게 캐주얼 정장을 차려 입은 한 맨유의 열혈팬이 ‘F’로 시작하는 욕설을 너무도 현란하고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팬은 상대팀 선수와 심판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를 동원해, 시기 적절한(?) 욕설을 날린 후 물끄러미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나를 향해 찡긋 윙크까지 날리는 여유를 보였다.
그 욕설의 내용을 지면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해 아쉽지만 내심 ‘저렇게도 저 말을 쓸 수가 있구나’하고 생각할 정도여서 지금도 경기장에서 열심히 야유를 해대는 관중을 보면 그 청년의 얼굴이 생각난다.
상대팀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라면 ‘열정의 나라’ 브라질의 팬들도 뒤지지 않는다. 브라질 관중들이 내뱉는 욕설은 내용이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 ‘X(오물)나 처먹어라’거나 ‘창녀의 자식’ 등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원정팀 벤치 바로 뒤의 펜스에 바짝 붙어 욕설을 해댄다는 점이다.
원정팀 감독은 가뜩이나 불리한 여건으로 인해 바짝 신경이 곤두서 있을 터. 여기에다 홈팀 관중 수십명이 바로 귓잔등 뒤에서 욕설을 해대니 그 심정은 말하지 않아도 알만 했다. 행여 관중들의 욕설에 발끈해 뒤라도 돌아보는 날에는 아예 관중석에 앉아있던 수백명 까지 가세해 욕설을 해대니 화가 나도 돌아보지 조차 못한다.
13일 전남-경남전을 관전하기 위해 광양전용구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한 60대 할머니가 화끈한 목소리로 욕설을 날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점잖은 우리 나라의 관중 속에도 저런 열혈팬(?)이 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물론 욕설을 퍼붓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추연구 FS코퍼레이션 이사
체육기자 출신의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선수 에이전트. 축구 관련 사업에 올인해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가 되겠다는 목표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