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팩스는 담담히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다른 팀의 3번 타자를 상대할 때와 다름없이 투구했지. 어차피 4번 타순에 윌리 매코비도 있는데 메이스에게만 특별하게 신경을 쓸 수는 없거든.”
언뜻 들으면 메이스 같이 모든 것을 다 갖춘 타자도 일반 강타자와 그다지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대투수의 오만함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마운드에서 투수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메이스가 위대한 타자라고 해도 각 팀의 중심 타자들은 투수들에게 모두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들 타자와 상대할 때 이미 마운드의 투수들은 더욱 조심스럽고 자신의 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신경쓰는 투구를 하게 돼있다. 아무리 성적이 하위권에 떨어져있는 팀의 3, 4번 타자라고 해도 말 그대로 ‘만만하게’ 던질 수 있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조심스러운 투구와 꼬리를 내리는 투구가 같을 수는 없다. 실제 경기에서 상대 간판타자를 지나치게 경계하다 출루를 남발하고 실점하며 자기 스스로 페이스를 잃고 무너지는 투수들을 부지기수로 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칠 테면 쳐보라’는 식의 배짱투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쿠팩스의 말 중 포인트는 바로 ‘다른 팀의 3번 타자’이다. 쿠팩스가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66년을 기준으로 피츠버그의 윌리 스타겔과 로베르토 클레멘테, 필라델피아의 딕 앨런, 애틀랜타의 행크 에런과 조 토리, 심지어 리그 최하위권 팀인 시카고 컵스에도 어니 뱅크스, 론 산토와 같은 대타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어느 팀과 상대해도 피해갈 수 없는 강타자들과의 승부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결국 자신의 페이스는 잃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자신이 마운드에 서있을 때는 스스로가 경기의 주인이다. 이미 프로에 발을 디딘 순간 쉬운 일은 없다. 마운드에 설 때 마다 부딪치는 강타자들을 제압하지 못하면 어차피 자신의 야구 인생도 가시밭길일 것이다.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 이런 투수를 팬들을 원할 것이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