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멜먼 > 우즈… 신은 ‘이’를 택했다

  • 입력 2008년 4월 15일 09시 00분


“볼을 끝까지 보고 그린에서는 시간을 갖고 퍼트 라인을 다시 한번 읽어라. 나는 네가 우승할 것으로 믿는다.”

남아공화국의 전설적인 골퍼 개리 플레이어(73)는 마스터스 3라운드를 마치고 손자뻘 되는 트레버 이멜먼에게 이렇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믿음처럼 14일(한국시간) 최종 라운드에서 이멜먼은 남아공 출신으로는 두 번째 마스터스의 그린재킷 주인공이 됐다.

이멜먼은 마지막 날 3오버파 75타를 기록했지만 그랜드슬램을 노렸던 타이거 우즈 역시 이븐파에 그쳐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 4라운드서 버디 2, 보기 3, 더블보기 1개를 기록했다.

5 언더파로 2위에 머무른 우즈와는 3타 차였다. 이날 1오버파를 때린 최경주는 합계 10오버파 298타로 41위에 그쳤다. 마스터스는 전년도 공동 16위까지 오른 선수를 다음 대회에 초청한다.

○남아공화국의 자존심을 지켜준 이멜먼

골프 강국 남아공은 개리 플레이어가 유일하게 마스터스에서 3차례 우승했다.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 팀 클락, 로리 사바티니 등이 플레이어의 뒤를 이으려고 했지만 모두 2위에 그쳐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2008년 사흘 연속 60대 타를 때린 이멜먼이 마스터스의 챔피언으로 등극하며 남아공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멜먼은 1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심상치 않은 출발을 했다. 심상치 않다는 것은 우즈의 역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 그러나 이멜먼은 침착했다. 경쟁자들이 심술을 부리는 그린에 나가 떨어졌을 때 파로 위기를 탈출했다. 최대 위기는 16번홀(파3). 티샷이 연못에 빠졌을 때다.

세번째 샷으로 온그린 한 뒤 두 번의 퍼트로 마감,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우승 안정권이었다. 17번홀에서는 두 번째 샷이 벙커로 빠졌고, 18번홀에서는 정확하게 때린 드라이브 샷이 디보트(잔디가 파인 곳)에 들어가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파로 끝내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행운의 이멜먼

29세의 이멜먼은 주로 유럽무대에서 활동했다. 통산 10개 대회에 우승경험이 있고 이 가운데 PGA 투어 우승은 두 차례다. 역대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지난 시즌 PGA 챔피언십 공동 6위다. 이멜먼은 1라운드부터 4언더파 68타로 선두를 지켰다. 2라운드 4언더파, 3라운드에서 3언더파를 각각 작성했다. 마스터스 사상 4라운드 내내 60타를 기록한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멜먼은 최종일에 새 역사를 만들려고 했지만 힘이 부쳤다. 결국 우즈를 뿌리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멜먼에게는 행운도 따랐다. 3라운드에서 미국의 브랜트 스니데커와 영국의 폴 케이시에게 한 때 선두를 빼앗겼으나 되찾았다. 스니데커가 아멘코스(11, 12, 13번홀)에서 3연속 보기를 기록하는 사이 이멜먼은 이 코스에서 1언더파를 작성했다. 15번홀(파5, 530야드)에서 세 번째 웨지샷이 백스핀을 먹어 그린에 맞고 연못으로 빠질 뻔 했으나 프린지에 걸려 2타를 세이브했다.

닉 팔도는 “여태껏 이 코스에서 볼이 프린지에 걸리는 경우는 처음 봤다. 이멜먼은 운도 따라 준다”고 했다. 이멜먼도 “볼이 물에 빠지는 줄 알았다”고 껄껄 웃었다. 행운의 여신은 결국 마지막 날까지 그를 지켜줬다.

○최종 라운드 언더파 불허

최종 라운드에서 언더파를 때린 선수는 45명 가운데 단 4명에 불과하다. 스페인의 미겔 앙헬 히메네스가 4언더파 68타로 데일리베스트를 기록했다. 히메네스는 합계 1언더파 287타로 공동 8위를 마크했다.

3라운드에서 상위권에 포진해 있던 선수들은 모두 그린에서 무너졌다. 우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1m가 안되는 짧은 퍼트도 홀컵을 외면했다. 마스터스의 유리알 그린이 실감났다. 주최측은 최종일 가장 어려운 곳에 핀을 꼽아 선수들을 절절 매게 만들었다.

마스터스의 마지막 날 그린에서는 선수도 주말 골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멜먼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짝을 이른 스니데커는 2번홀(파5)에서 이글을 기록하고도 보기 9개로 무너졌다. 최종일 하루 5오버파로 주저앉았다. 합계 4언더파 284타로 공동 4위를 마크했다. 8언더파 3위로 시작한 스티브 플레시(미국)도 6오버파를 때려 공동 5위로 내려앉았다. 우려했던 바람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큰 변수는 되지 못했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우즈는 합계 5오버파 283타 2위로 체면치레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3라운드에 선두로 나서지 않는 한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할 수 없다는 ‘기록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우즈는 13번 메이저 대회 우승 가운데 3라운드 후 역전극은 없다. 퍼트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 우즈도 최종일 마스터스의 유리알 그린에 두 손을 들었다. 버디, 보기 각각 3개씩 이었다.

LA= 문상열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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