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의 우세 속에 삼성이 2연패 후 첫 승을 거둬 우승 반지의 향방이 흥미롭게 됐다.
프로 출범 후 12번째 챔피언전을 보면서 문득 KCC 허재 감독이 떠올랐다. 챔피언전에서 숱하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아름다운 준우승’이란 찬사까지 들어서다.
그는 기아 시절인 1998년 현대와 챔피언전에서 만나 눈썹이 찢어지고 오른손이 부러지는 등 만신창이가 되고도 강인한 투혼으로 승부를 7차전까지 몰고 갔다. 비록 이상민 조성원 맥도웰 등을 앞세운 현대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허 감독은 현재까지도 유일한 준우승 팀 출신의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허 감독은 TG 유니폼을 입은 2003년 동양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38세의 고령에도 코트를 누비다 5차전에서 힉스와 부딪쳐 갈비뼈를 다쳐 더는 뛸 수 없었다. 그래도 병원 대신 벤치에서 김주성 신종석 등 후배들을 격려하더니 6차전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눈앞에 둔 경기 종료 1.3초 전 교체 멤버로 출전해 가슴 벅찬 우승의 순간을 코트에서 맞았다. 잊지 못할 장면을 만든 건 당시 사령탑인 전창진 동부 감독이었다.
허 감독은 은퇴 직전인 2004년 챔피언전에 또 올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상민을 앞세운 KCC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당시 김주성은 “떠나는 허재 형에게 꼭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정상의 문턱에 서면 허 감독은 “한번 날아간 새는 다시 날아오지 않는다. 우승 기회가 오면 꼭 잡아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때 허 감독과 호흡을 맞추거나 맞붙었던 동부 김주성과 삼성 이상민은 이번 시즌 각자 팀의 리더로 단 하나뿐인 우승 트로피를 다투고 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승리의 새’를 품안에 안으려면 허 감독과 같은 불굴의 의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결과와 상관없이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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