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전 ‘항구의 결투’ 무실점 5S
‘부산 갈매기’는 딱 세 번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가운데 5회 때를 제외면 7회나 9회의 ‘부산 갈매기’ 합창은 경기 흐름과 전혀 무관하게 나왔을 뿐이다. SK 와이번스가 시종일관 게임을 지배했다는 숨길 수 없는 징표였다.
SK 1위 독주(16승 4패) 채비를 바라보면 경외감마저 든다. 23일 롯데전 선발 라인업을 보면 1루수 이재원-2루수 모창민-3루수 김동건-유격수 정근우가 나왔다. 멀쩡한 자리가 한 군데도 없다. 1루수 이호준과 2루수 정경배는 개막부터 빠져 있고, 유격수 나주환도 교체 출장했으나 두산전 수비 중 무릎 부상을 입었다. 3루수 최정 마저 편도선염으로 출장 불능이다.
이밖에 SK를 덮친 감기 증세로 김성근 감독과 투수 채병용, 송은범도 정상이 아니다. 김재현도 몸살 증세를 보여 23일 롯데전에 결장했다. 오죽하면 1번타자로 지명타자 포지션의 박재홍이 출장했을 지경이었다. “바꿔줄 선수도 없다”란 김 감독의 넋두리가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 지경에서 SK는 패하면 1위 자리를 내줘야 하는 23일 롯데와의 외나무 격돌을 5-2 완승으로 이끌었다. 이 승리로 2위 롯데(12승 6패)와 승차는 2경기로 벌어졌다.
라인업 짜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만신창이 지경인데도 어떻게든 이겨나가는 SK 저력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SK가 작년 우승 직후 화두로 꺼내들었던 ‘2군의 1군화’가 성과를 드러내고 있는 덕분이다.
실제 한국시리즈 우승 바로 다음날 김 감독은 공식 인터뷰를 갖고 2군과 루키 선수 위주의 일본 고지캠프 얘기를 꺼냈다. 김 감독의 지향점에 공감한 SK 프런트는 국내 유일의 2군 해외 전훈 지원을 위해 흔쾌히 5억원을 투자했다. ‘2군의 1군화’는 선수단 전체에 동기부여와 무한경쟁의 선순환을 일으켰다.
SK의 또 하나의 무서움은 1점차 승부와 연장 승부에 강한 점이다. 마무리 정대현과 불펜진의 리더 조웅천, No 1 좌완 릴리프로 떠오른 정우람의 존재가 결정적이다. 특히 정대현은 무릎이 완전치 않은 상황인데도 5세이브를 기록중이다. 삼성전 3연속 세이브에 이어 23일 롯데전도 1.2이닝 무실점으로 선발 채병용의 승리(3승)를 지켜냈다. 연장전 3승(1패), 1점차 승부 5승(1패)의 비결이기도 하다.
반면 제리 로이스터의 롯데는 김주찬의 부상 공백을 곧바로 노출했다. 이승화가 들어왔으나 5회 병살타를 치는 등 주전-비주전의 격차가 현격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SK전을 앞두고 “롯데는 과거의 롯데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1년 전 롯데는 SK 상대로 4승 14패였다. 특히 문학에서 1승 8패였다. ‘역사는 과거를 선택적으로 기억하려는 자를 반복해서 응징한다’란 말이 있다.
밖으론 사방이 적이고, 안으론 부상병동이지만 SK는 이겨나가고 있다. 팀 전체가 김 감독의 처절한 승부근성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