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의 대표적인 선수가 케리 라이텐버그입니다. 존 슈월츠 애틀랜타 단장은 1990년대 후반 자기 아래서 오랫 동안 선수 생활을 했던 그렉 올슨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당시 올슨은 이미 현역에서 은퇴했고 고향인 미네소타에서 낮에는 부동산 전문가로, 밤에는 독립리그팀 감독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올슨의 전화내용은 이랬습니다. “우리팀에 케리 라이텐버그라는 좋은 투수가 있습니다. 우리 팀이 여러 가지 장비가 부족한데 야구공과 배트 좀 보내주시면 우리가 라이텐버그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슈월츠 단장은 올슨 감독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자기 아래서 선수생활을 했던 인물이라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공과 배트를 보내줘 일종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라이텐버그는 애틀랜타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올슨 감독이 예견한대로 메이저리거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를 가깝게 경험하면서 많은 트레이드를 접했습니다.미국 야구팬들에게는 야구경기 자체 만큼 흥미로운 게 트레이드이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선수들 대부분도 트레이드 경험자들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트레이드를 겪어본 것은 김병현 선수의 첫 번째 트레이드였습니다. 당시 에이전트였던 제프 무라드는 보스턴행 루머가 들리기 전부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트레이드가 발표되기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김병현 선수가 트레이드 되던 당시 애리조나는 샌프란시스코 원정 중이었습니다. 트레이드 발표를 하루 앞두고 매트 맨타이 선수가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면서 혹시 트레이드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원래 예정일보다 하루 늦춰져 다음 원정지인 샌디에이고에서 발표됐습니다. 당시 트레이드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조 가라지올라 애리조나 단장은 김병현 선수를 직접 자기 방으로 부른후 “트레이드가 곧 발표될 것”이라고 통보했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가라지올라 단장은 스카우트를 위해 자기가 직접 한국까지 방문해 김병현 선수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어쩌면 김병현 선수와 라이벌 관계였던 마무리 맨타이 선수만 김병현 선수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작별 인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정작 트레이드가 되고 나면 선수들은 며칠 동안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보통 이틀 정도의 개인 시간을 주지만 이사준비를 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대부분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새로운 도시로 떠나게 됩니다.팀마다 방침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사비용으로 1만달러 가량이 선수 앞으로 지급되고 약 보름 동안은 호텔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막 트레이드를 당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일반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얼굴이 밝다는 점입니다. 트레이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며 라이텐버그의 경우처럼 새로운 무대와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대니얼 김 Special Contributer
OB 베어스 원년 어린이 회원으로 어릴 적부터
야구에 미쳤다. 8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뉴욕 메츠 직원을거쳐 김병현과 서재응의 미디어
에이전트코디네이터로그들과 영욕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