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철 상벌위원장 “인맥은 없다. 내 잣대는 원칙뿐”

  • 입력 2008년 5월 2일 09시 18분


프로축구연맹 곽영철(59) 상벌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서초동 사무실을 찾은 날,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2군 리그에서 상대 선수를 때린 전북 제칼로 선수에 대한 상벌위원회가 열렸다. 곽영철 위원장이 부임한 후 처음 열린 상벌위. 법조인 출신 상벌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올해 상벌위의 징계 수위가 다소 엄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던 만큼 먼저 상벌위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제칼로는 이날 1,2군 각각 10경기 출전정지, 벌금 1000만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원칙대로만 할 뿐

“별다른 거 있나요. 원칙대로 했을 뿐이지. 원칙대로.” 곽영철 위원장이 첫 마디에 강조한 단어는 바로 ‘원칙’이었다.

“선수 개인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죠. 축구라는 것이 몸과 몸이 부딪치는 스포츠고, 조금만 흥분하면 바로 폭력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경기장 폭력은 여하를 불문하고 엄하게 다뤄야 합니다. 폭력은 축구의 적입니다.”

그렇다면 특수부와 마약부, 강력부를 두루 거친 곽 위원장의 현역 검사시절 모습은 어땠을까. 곽 위원장은 이 질문에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검사였다”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이어 평검사 때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들었다고 털어놨다.

“원리원칙을 중요시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융통성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26년 간 지켜온 철칙 중 하나가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직책이 높아지면서 좀 부드럽게 변하긴 했지만 원칙을 중요시하는 것만은 변치 않았죠. 그건 여기(축구연맹)에 와서도 마찬가지에요.”

○내 사랑 축구

사무실 한편에 놓여있는 테니스 라켓이 눈에 띄었다. 곽 위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와 테니스다.

곽 위원장 역시 소싯적에는 축구를 좀 했다.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테니스는 하는 스포츠, 축구는 보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저 보통 축구팬이 아니에요. 광팬이지. 축구 A매치랑 개인적인 약속이 겹치면 약속은 반드시 취소합니다. 어떤 모임이든 간에 A매치 보는 것 만큼 중요한 건 없거든요.”

요즘 곽 위원장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를 보느라 밤잠을 설친다.

“국내 프로축구도 사랑하지만. 요즘에는 프리미어리그도 많이 중계하고 있잖아요. 이게 이게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잠을 못자요. 맨날 밤낮이 바뀌어 살아요.”

곽 위원장은 축구명문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호 대전 감독이 그보다 5년 선배,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전무는 2년 후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을 만나본 적은 없다.

“저요? 축구판에 인맥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축구를 잘 하는 학교를 다니면서 남들보다 좀더 관심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죠. 그 때가 부산상고와의 경기였을 겁니다. 다 같이 버스타고 구덕운동장으로 응원을 갔죠. 버스 타고 다녀오며 응원가 부르고, 그날 아마 패싸움도 벌어졌을 걸요. 그런 게 축구의 낭만이었죠.”

그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한승은 프로연맹에 여러 차례 법률 자문으로 도움을 줬다. 그게 인연이 돼 프로연맹이 올초 한승의 대표변호사인 곽영철 위원장에게 상벌위원장직을 제안했고, 곽 위원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오케이를 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죠. 반가웠어요. 저는 프로축구에 상벌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있는 지도 몰랐지만, 제가 관심있는 스포츠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 흔쾌히 응했습니다.”

○감투 생기니 부자연스러워

곽영철 위원장은 이제 프로축구를 즐기면서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멋진 플레이가 나오고 골이 들어가면 펄쩍펄쩍 뛰기도 해야 하는데 특정 팀 좋아한다는 오해받을까봐 그렇게 못해요. 직책이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하네요. 그래도 박수 정도는 괜찮겠죠?”

자신의 이야기가 의도와는 다르게 기사화되는 것 역시 난감한 일. 대표적인 것이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모 프로구단 축구선수와 그 애인의 공방전에 대한 곽 위원장의 의견이었다.

“‘축구선수도 공인이니 일정한 도덕적 의무가 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공인으로서 자제할 부분은 있다’고 말한 것이 마치 상벌위가 선수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됐습니다. 연맹 규정에 사생활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프로축구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릴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합니다.”

이어 언론에도 따끔한 충고의 한 마디를 던졌다. “언론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곽영철 위원장은 인터뷰 도중 연맹 규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예 규정집을 테이블 위로 가지고 와서 답변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읽어본 규정집, 하지만 지금도 직접 보면서 정확하게 답변을 해야만 안심이 된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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