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남녀체급별 유도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이 열린 7일 수원실내체육관.
관중석에서 왕기춘(20·용인대·사진)을 지켜보던 아버지 왕태연(51) 씨는 애를 태웠다. 왕기춘은 고교 1학년 때 다친 왼쪽 발목을 2주 전에 또 다쳐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1회전에서 연장 끝에 방귀만(KRA)을 판정으로 눌렀고 2회전에서 서동규(포항시청)에게 효과 1개를 따내 힘겹게 결승에 올랐다.
경기가 안 풀린 날이면 유도 연습용 인형을 안고 밤새워 씨름했던 스무 살 청년이 한국 유도의 ‘황금 체급’ 73kg급을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왕기춘은 승자 결승에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7·KRA)와 만났다. 한때 이원희는 왕기춘에게 넘보기 힘든 우상이었다. 이원희의 훈련파트너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갔고 넘어지고 메쳐지며 이원희의 기술을 몸으로 익힌 그였다.
이원희는 경기 시작 18초 만에 업어치기 기술을 걸었지만 점수로 인정받지 못했다. 부심 한 명이 효과를 선언한 데 반해 주심과 다른 부심 한 명이 포인트를 인정하지 않은 것. 왕기춘은 “뒤집힐 때 탄력이 커서 효과 정도는 뺏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결국 승리는 연장전 종료 2분 6초를 남기고 다리잡아메치기로 유효를 따낸 왕기춘에게 돌아갔다.
패자전을 통해 부활을 노렸던 이원희는 김원중(용인대)에게마저 발목을 잡혔다. 한국 유도 사상 최초의 올림픽 2연패 꿈도 무산됐다. 경기가 끝난 뒤 상기된 표정의 이원희는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왕기춘은 최종 결승에서 김원중을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왕기춘은 “올림픽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면 원희 형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왕기춘이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한국의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이 밖에 남자부 60kg급 최민호(KRA), 66kg급 김주진(용인대), 여자부 63kg급 공자영(포항시청), 70kg급 박가연(동해시청), 78kg급 정경미(하이원), 78kg 이상급 김나영(용인대)도 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수원=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