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황제가 복귀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는 박주봉에게 최상의 조를 만들어주기 위해 배려했다. 주변에서는 혼합복식 파트너로 길영아가 가장 낫다고 판단했지만 박주봉은 한체대 제자인 라경민을 택했다. 우려와 달리 박주봉-라경민 조는 오픈대회를 휩쓸며 금메달 0순위로 꼽혔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결승. 상대는 한국의 김동문-길영아 조였다. 배드민턴대표팀 김중수 감독은 “연습경기때는 김동문-길영아 조가 (박주봉-라경민 조에게) 절반도 못 쫓아왔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긴장한 라경민이 연신 실책을 범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박주봉이 무슨 말을 해도 라경민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중수 감독은 “(라)경민이가 긴장한 탓인지 초등학교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간의 경기라서 코칭스태프는 벤치에 앉지 않았다. 김중수 감독은 “(김동문-길영아 조에게) 지라고 할 수도 없고,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었다”라고 했다. 박주봉이 복귀할 때는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박주봉으로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복귀의 명분이 서지 않는 상황.
은메달을 목에 건 박주봉은 호텔방에서 눈물을 흘렸고, 김중수 감독은 박주봉을 밤새 달래줘야 했다. 미안한 라경민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경민은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려야 했다.
4년 뒤 라경민은 김동문과 호흡을 맞춰 시드니올림픽에 나섰다. 김동문-라경민조는 국제대회를 휩쓸며 금메달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둘 다 홀렸다. 김동문-라경민조는 2004년 아테네에서 금메달에 재도전했지만 뜻밖에도 김동문이 평소와 달랐다. 라경민이 “오빠, 정신차려!”라고 흔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중수 감독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면서 “선수들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줬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역 마지막 경기의 한을 가지고 있는 박주봉은 일본대표팀 사령탑으로 베이징올림픽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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