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사 배창근 감독에게도 허락을 얻어냈다. 불안한 마음에 2004년 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kg급 금메달리스트 정지현(25·삼성생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 코치님은 쥐어짜는 힘이 엄청나요. 갈비뼈 조심해야 될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걱정스러운 기운을 감지했는지 정지현이 위로의 한마디를 던졌다. “일반인인데 심하게 하겠어요? 그냥 즐긴다는 기분으로 몸을 맡기세요.”
○매트달리기와 구르기
동해 북평고등학교 체육관. 그레코로만형 55kg급에서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은 2005·2007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 박은철(27)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자유형 74kg급 금메달·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조병관(27), 제1차 국가대표선발전 자유형 55kg급 우승자 양재훈(27)이 보였다. 후드 티셔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옷을 끼어 입은 선수도 눈에 띈다. 그레코로만형 60kg급 곽현영(24)이다. 베이징올림픽 제2차 국가대표선발대회 계체 2시간 전, 한 방울의 땀이라도 더 흘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체급이 비슷한 조병관이 경기복을 빌려줬다. 몸에 딱 붙는 타이즈형.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편안하다. 일단 매트를 돈다. 15분여를 뛰고서야 일일코치를 자청한 조병관에게 물었다. “선수들은 보통 몸 풀기로 언제까지 뛰나요?” “힘드세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 오늘은 (곽)현영이 때문에 계속 뛰는 겁니다. 혼자서 체중감량을 하려면 괴롭거든요. 이제 다른 거 하시죠.” 선수들의 평소체중은 자기 체급에서 7∼8kg을 상회한다. 벌써 경기복에 땀이 찼다.
레슬링은 유연성이 중요하다. 우선 앞구르기, 뒤구르기부터 시작했다. 점점 난이도가 높아진다. 앞으로 굴러 물구나무섰다 일어서기. 뒤로 굴러 물구나무서기 등. 정지현이 “체조선수출신이라 유리했다”던 말이 이해가 갔다.
“당연히 처음에는 잘 안 될 겁니다.” 손오공이 따로 없다. 심 코치는 정장차림으로 물구나무서서 매트 위를 이동하는 묘기를 보여줬다. 반면 이쪽은 둔한 저팔계에 말귀 못 알아먹는 사오정이다. “최대한 둥그렇게 몸을 만들어요. 몸에 반동을 이용해야죠.” 땀은 주르륵, 심 코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기술연마
이제 본격적인 기술연마. 첫 번째는 정면태클. 상대다리 사이에 내 다리를 넣고 양 손으로 상대 무릎을 당긴다. 순간 내 상체로 상대의 허벅지를 눌러 제압해야 한다.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는 인사이드 태클은 조병관의 주특기. 시범을 보인다로 핑계로 다가오는데 성난 황소가 따로 없다. 이번에는 내 차례.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어요.” 근육질 몸에 부딪친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슴으로 밀어야 힘이 전달된다.
두 번째는 옆굴리기. “잡으면 무조건 돌렸다”는 심 코치의 현역시절 주특기다. 일단 상대의 상체를 잡는다. 주의할 점은 깍지를 끼어서는 안 된다는 것. 왼손으로는 오른쪽 하박을, 오른손으로는 왼쪽 하박을 잡고 팔꿈치를 상체에 붙여 상대에게 온 몸의 힘이 전달되도록 한다. 돌리는 순간에는 상대의 다리 사이로 내 다리를 넣어 지렛대 역할을 하도록 한다.
심 코치를 상대로 파테르 공격을 펼쳤다. 심 코치가 자신의 아랫배 사이로 손을 넣고 굴릴 수 있는 완벽한 자세까지 허용해줬다. 심 코치는 하체를 이용한 수비 금지. 나는 하체를 쓸 수 있다. 심 코치와는 몸무게가 20kg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바윗덩이처럼 꿈쩍도 안한다. 1분여 가량 공격 후 심 코치의 반격.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사이 심 코치가 내 허리를 잡고 있었다. 이어 심 코치가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어깨를 눌렀다. “한 번 빠져나와 보세요.” 몸부림칠수록 조여 오는 덫이다. 옆에서는 조병관이 “저 자세에 걸리면 저도 못 빠져 나옵니다”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심 코치가 말하던 “정말 자존심 상하는 자세”다.
○힘겨루기와 밧줄타기
덤으로 상대방과 힘겨루기를 하는 자세도 배웠다. 우선 상대의 팔을 잡을 수 있다면 성공. 손가락을 잡아 꺾으면 반칙이지만 심판 몰래 살짝 잡기도 한다. 이마로 상대를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가 하체 태클을 들어오면 머리로 상대를 받기까지 한다. 조병관은 2008년 3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자유형 74kg 금메달리스트 박장순 감독과의 스파링도중 박 감독의 코뼈를 이마로 부러뜨리기도 했다.
연습을 다 끝내고 보니 천장에서 내려와 있는 굵은 밧줄이 보였다. 높이는 10m가량. 조병관은 “보통 10회 정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6·7회부터는 손에 마비가 올 때도 있다”고 했다. 떨어질 때를 대비해 두꺼운 매트를 깔아두는 것은 필수. “힘들지만 전신근육이 모두 발달된다”고 했다. 딱 한 번만 올라가 보기로 했다. 5m를 채 올라가기도 전에 “뚝.” 밧줄을 타고 올라가 해와 달이 됐다던 오누이가 환생한다면 분명 올림픽 금메달감이다.
동해|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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