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노조가 ‘최저 연봉·FA제도’ 따냈다

  • 입력 2008년 5월 15일 09시 12분


마빈 밀러는 메이저리그의 100년 인권 역사를 논할 때, 재키 로빈슨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로빈슨이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 입단으로 흑백 인종의 벽을 깼다면 밀러는 ‘미국 최강의 노동조합’이라 일컬어지는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의 아버지에 해당되는 존재다.

전미철강노동조합의 이코노미스트였던 밀러는 선수노조의 초대 이사로 부임해 1983년 퇴임할 때까지 선수의 권익 향상에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68년 노사교섭을 통해 최저연봉 보장과 조정신청을 중재할 제 3의 기구 설립을 이끌어냈다. 이어 75년엔 선수들의 숙원인 FA(프리에이전트) 도입을 성취했다. 밀러는 빅리그에서 풀타임 6년을 뛰어야 FA 자격을 획득하는 데 합의했는데, 이는 수요-공급 법칙을 간파한 혜안이었다. 덕분에 소수만이 FA 시장에 나오게 됐고, 이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 쟁취하는데 선수노조는 총 5차례의 파업을 감행했다. 구단 측 역시 3차례의 직장폐쇄로 맞받았다. 특히 94년의 파업 사태는 232일간 이어져 월드시리즈 취소란 초유의 파국을 빚었다. 그러나 이 투쟁으로 선수노조는 구단의 샐러리캡(총 연봉제한) 도입을 저지할 수 있었다. 참고로 NBA(미프로농구)와 NFL(미프로풋볼)은 샐러리캡을 실시 중이다.

이후 선수노조는 2002년엔 소득분배제도와 사치세 도입 추진을 둘러싸고, 또 다시 일촉즉발 위기가 있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우려를 표명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일반 팬들은 “억만장자(구단주) 대 백만장자(선수)의 싸움”이라며 염증을 드러내는 실정이다.

이제 더 이상 구단 대 선수의 대결은 강자 대 약자 내지는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선수노조를 교섭 파트너로 인정한지 오래고, 메이저리거가 관련된 모든 경기에 대해 협의를 해야 한다. 정규시즌 스케줄은 물론 해외원정,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국제대회 역시 선수노조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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