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싸워야 하는 선수들을 위해 과학기술이 ‘수호천사’가 될 수 없을까.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체육과학연구원은 20일 ‘스포츠와 측정’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세계 측정의 날’을 기념해 열린 이 행사에서는 극한 환경에서 선수를 보호하는 첨단 측정 장비들이 소개됐다.
○ 섭씨 ‘0.0001도’ 정밀도로 일사병 막아
알약형 온도계는 소화제와 모양, 크기가 꼭 닮았다. 온도계를 알약 먹듯 삼키면 외부 모니터에 무선으로 전송된 선수의 체온 정보가 나온다. 의료진은 시시각각 변하는 선수의 체온을 확인하다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즉시 훈련을 중단시켜 선수를 보호한다. 미국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나 소방관들이 이 온도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온도계의 핵심은 세밀한 측정이다. 현재 사용하는 알약형 온도계의 정밀도는 섭씨 0.1도다. 그러나 표준과학연구원은 온도계의 정밀도를 섭씨 0.0001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표준백금저항 온도계’라는 첨단 장비 덕분이다.
이 장비에는 온도가 바뀌면 저항도 일정하게 변하는 백금이 들어 있다. 백금의 저항을 측정하면 거꾸로 온도의 변화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기술을 알약형 온도계에 적용하면 선수의 체온 변화를 훨씬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표준과학연구원 기반전략팀 김용규 박사는 “표준백금저항 온도계는 크기 때문에 아직은 알약형 온도계에 적용하기 어렵지만 기술이 더 개발되면 차세대 알약형 온도계에 응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심장 수축 때 미세한 자기장 잡아내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경기에서 카메룬 대표 선수가 갑자기 쓰러져 심장마비로 사망한 적이 있다. 초전도양자간섭장치는 선수들의 이런 돌연사를 예방한다.
뇌나 심장에서는 아주 미세한 자기 신호가 나온다. 강도가 너무 낮아 기존 의료장비로는 이를 측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초전도양자간섭장치는 심장 근육이 수축할 때 생기는 미세한 자기장을 잡아내 신체의 이상 유무를 미리 알 수 있다. 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은 이 장비를 2003년 개발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국립대만대병원에 공급했다.
표준과학연구원 의료계측연구단 박용기 박사는 “건강해 보이는 선수들도 이 장비로 진단하면 의외의 심장 질환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며 “무리하게 심장을 쓰다 돌연사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유전자 도핑 연구도 활발
근육을 강화하거나 지구력을 높이는 유전자를 인체 세포에 이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세계반도핑기구는 2005년 유전자 도핑을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운동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몸 안에 넣으면 운동 능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근육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나친 고속 주행이 자동차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유전자 도핑을 철저히 잡아낼 만한 기술은 아직 없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대사연구센터 노동석 박사는 “유전자 도핑이 적발된 예는 없지만 생명과학의 발달 추세로 봤을 때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현재 다양한 분석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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