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윤길현 죽이기’… 끝 안보이는 검은 클릭

  • 입력 2008년 6월 21일 03시 01분


SK 김성근 감독은 19일 두산과의 잠실 경기를 더그아웃이 아닌 호텔방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 그는 ‘윤길현 파문’에 대한 ‘사죄’를 하기 위해 이날 스스로 벤치를 떠났다. 평생을 야구밖에 몰랐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15일 파문 이후 당사자인 윤길현의 휴대전화에는 수백 통의 문자메시지와 전화가 왔다. 이 중에는 다짜고짜 “죽여버리겠다” “밤길 조심해라”는 등의 욕설도 있었다. 김 감독의 휴대전화에도 이틀간 200여 건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SK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3000건이 넘는 항의 글이 올라왔다. 전화도 수백 통이 걸려왔다. KIA 구단 홈페이지에도 파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프런트를 교체하라는 글이 게시됐다.

11년 선배에게 욕설을 한 윤길현의 잘못은 너무나 명백하다. TV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경기 뒤 SK 구단은 팬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고 당사자끼리도 사과를 주고받았다. 급기야 김 감독이 나서서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럼에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팬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길현에 대한 징계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야구계에서 그를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윤길현 제명 운동’ ‘문학구장 무관중 운동’ ‘SK 선수의 올림픽 참가 제외 운동’ 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매장시키거나 영웅으로 만드는 게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가능하다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다.

윤길현은 이제 ‘패륜아’로 낙인찍혔다.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야구만 바라보고 살아갈 유망주가 순간의 실수 때문에 추방당해야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앞에선 좀 더 신중한 클릭이 필요한 게 아닐까.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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