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는 21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에른트스 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유로2008 8강전에서 전후반 90분 동안 득점 없이 비긴 뒤 연장전에서마저 승부를 내지 못해 승부차기에 돌입했지만, 선수들의 잇단 실축으로 터키에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크로아티아는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무려 10년 만에 메이저 대회 4강에 도전했지만, 11m 승부차기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8강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반면 터키는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한 끝에 크로아티아를 격파, 조별 리그 2차전(스위스)과 3차전(체코)에 이어 3경기 연속 역전승을 거두는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힘겹게 4강행 티켓을 거머쥔 터키는 오는 26일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4강에 선착한 ‘전차군단’ 독일과 결승 진출을 놓고 다투게 됐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크로아티아가 아닌 터키였다.
경기 초반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던 크로아티아는 전반 17분 먼저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잡았지만, 최전방 공격수 이비차 올리치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려 아쉽게 선제골을 터뜨리는데 실패했다.
‘게임 메이커’ 루카 모드리치의 경기 조율을 앞세워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가던 크로아티아는 전반 중반 이후 상승세가 다소 수그러들었다. 공격적인 전술로 나선 터키의 반격이 예상보다 강했기 때문.
치열한 중원싸움을 펼치며 소득 없는 공방만 이어가던 크로아티아는 오히려 전반 종료 직전 터키의 미드필더 메멧 토팔에게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허용하기도 했다.
전반을 득점 없이 0-0으로 마친 크로아티아는 후반 초반부터 상대를 거세게 몰아 부쳤지만, 골이 터지지 않자 윙 포워드 믈라덴 페트리치를 교체 투입해 공격의 활력을 불어 넣었다.
좀처럼 터키의 물샐 틈 없는 수비를 뚫지 못하던 크로아티아는 후반 38분 아크 정면에서 맞은 세트피스상황에서 다리오 스르나가 위협적인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혀 상대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기세를 올린 크로아티아는 후반 막판 파상공세를 펼치며 터키의 골문을 노렸지만, 터키 뤼스투 레치베르 골키퍼의 잇단 선방에 막혀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터키의 매서운 반격에 주춤하던 크로아티아가 다시 터키를 몰아 부치던 연장 후반 14분, 오매불망 기다리던 선제골이 터졌다. 모드리치의 크로스를 후반 교체 투입된 클라스니치가 헤딩슛으로 굳게 닫혀 있던 터키의 골네트를 가른 것.
하지만 선제골의 기쁨도 잠시. 승리를 확신하던 크로아티아는 경기 종료 15초를 남겨두고 터키의 세미 센투르크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허용해 승부차기로 4강 진출을 결정지어야 했다.
11m의 간격을 두고 골키퍼와 키커 사이에 팽팽함이 이어지던 운명의 승부차기. 승리의 여신은 터키에 웃음을 지었다. 터키의 키커로 나선 세 명의 선수들이 모두 골을 성공시킨 반면 크로아티아는 첫 번째 키커 모드리치를 포함해 세번째와 네번째 키커 라키티치와 페트리치가 연달아 실축했다.
경기가 끝난 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허탈감에 그라운드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지만, 터키 선수들은 서로 얼싸 안으며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4강에 진출한 기쁨을 자축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진회 기자 manu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