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15 공동선언 직후 남북화해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해있던 시절, 체육교류도 활발했다. 북한 김용남 코치는 장 감독에게 발레바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장 감독은 발레바를 잡기 위해 꾀를 냈다. 16강전까지 발레바의 18발 평균은 163.7점. 최옥실은 161.0점이었다. 하지만 발레바의 점수를 몇 점 줄여 거짓정보를 흘렸다. “(최)옥실아, 쟤 아무 것도 아니야. 평소에 너 하던 대로 하면 그냥 이긴다.” 기대가 현실이 됐다. 자신감에 찬 최옥실의 화살은 연거푸 정중앙을 꽂았고, 무명선수의 활약에 당황한 발레바는 부진했다.
결국 4강은 모두 주몽의 후예들로 채워졌다. 껄끄러운 상대를 잡아 준 최옥실은 4강에서 김남순에게, 3·4위전에서는 김수녕에게 패하며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메달사냥을 도운 동포들에게 장 감독은 선물까지 건넸다. 시상식 직후 장 감독은 축하파티를 벌이느라 밤늦게 선수촌으로 돌아왔다. 북한으로서도 4위는 만족스러웠다. 김용남 코치는 그 시각까지 장 감독을 기다려 인삼주로 답례했다. 장 감독은 “아직도 김용남 코치와 최옥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서 “양궁에서 심리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워준 사례”라고 했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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